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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한소설

러브호텔에서 생긴 일

관리자님 | 2017.10.24 19:15 | 조회 17791
러브호텔에서 생긴 일


 제  목: 러브호텔에서 생긴 일 (들어가는말)
 



     ☞첫째 이야기: 몰래 카메라 사건 岱

     "돈을 가지고 나오세요! 더도 덜도 아닌 삼백만원입니다. 반드시 당
   신 혼자 나와야  합니다. 만약 엉뚱한 생각을 한다거나 경찰에 신고를
   하는 날에는 당신과 당신의 여 비서가 주인공이 된 이 삼류 포르노 비
   디오 테이프를 당신의 마누라 앞으로 보내 주겠소. 명심하세요."

     전화를 끊은 진수는 괜스레 떨리는 마음을 억누르며 담배를 꺼내 불
   을 붙였다.
     바야흐로 오랫동안 구상해 오던 사업의 첫 단추를 뀌는 순간이었다.
   그러니 떨리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다음날 저녁, 서울역의 시계탑 밑에서 오십을 조금 넘긴  뚱뚱한 사
   내 하나가 작은  가방 하나를 들고 불안한  표정으로 서성거리고 있었
   다.
     아까부터 사내를 지켜보던 진수는  경찰의 잠복이 없는 것을 오랫동
   안 확인한  후에야 천천히 그 사내에게로 다가갔다. 검은  선글라스에
   챙이 큰 모자를 푹 눌러쓴 모습이었다.

     "이봐! 어쩌자고  이런 해괴한 짓을 하는  거야? 누구 신세 망칠 일
   있어? 액수도 가볍고 나도 더  이상 문제삼지 않을 터이니 어서 그 비
   디오 테이프를 내 놓으시지?"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사내가 다가오는 진수를 알아보고 서둘러 가방
   을 건네주며 말했다.

     "액수는 틀림없겠죠?"

     "그걸 말이라고 하나?"

     돈 가방을 건네  받은 진수는 신문지에 감싸  놓았던 비디오 테이프
   하나를 사내에게 내밀었다.

     "자, 그럼..."

     진수가 무어라고 말을 건네기도 전에 사내는 총총히 사라졌다.
     유유히 근처의 지하 커피숍 구석 자리에 자리를 잡은 진수는 가방을
   열고 사내가 건네준 돈을 확인했다. 빳빳한 만원 짜리 신권 삼백장, 틀
   림없는 삼백만원 이었다.
     진수의 입가에 잔잔히 미소가 번져 갔다.
     진수에게 돈을 건네준 사내는 제법 잘 나가는 전자 회사를 운영하는
   회사의 사장이었다. 그런  사내가 그의 딸 같은 나이의 어여쁜 여비서
   와 함께 러브호텔에 들러서 재미를 보다가 재수 없게도 진수에게 덜미
   를 잡힌 것이다. 적나라한 둘의 정사 장면을 비디오에 찍혀 가면서.
     진수가 이곳 경기도 외각의 모 유원지 근처에 있는 러브호텔에 취업
   을 한 것은 대략 일년 전의 일이었다.
     그동안 두어 번의 사업 실패로  인해 심신은 지쳐 있었고 나이는 어
   언 삼십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이곳에 온 이후로 그는 몰라보게 달라졌
   다는 소리를 들으며 열심히 일을 했다.
     그러나 새로운 희망으로 일어서려는 그에게 어느 날 작은 시련이 닥
   쳐왔다.
     전날이 어머님의 생신이었던 관계로  집엘 들렀다가 아침 일찍 출근
   을 했던 그는 첫 손님에게 갑작스레 뺨을 얻어맞은 것이다.
     주차장으로 검정색 외제 승용차 한 대가 미끄러져 들어올 때부터 어
   쩐지 불길한 예감이 들긴 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참으로 싸가지 없게
   생긴 어린 계집아이 하나와 문을 밀치고 들어선 사내는 다짜고짜 진수
   를 쳐다보며 말했었다.
     .
     "야! 깨끗하고 조용한 방 하나 줘라!"

     참으로 기가 막혔다. 고개를 들어 얼굴을 보니 이십대 중반을 갓 넘
   긴 듯한 나이였다. 그런데 예사롭게 반말을 내뱉고 있는 것이다. 물론
   숙박 업소의 종업원이 술집의 웨이터와  별반 다를 바가 없는 인식 때
   문에 어느 정도의 반말은 참을  수 있었지만 이처럼 나이도 어린 애송
   이같은 손님들까지 반말을 하는 데에는 정말 화가 치밀었다. 돈푼께나
   있다고 안하무인격으로 되어 가고 있는 부모 잘 만난 부류들이었다.

     "얼마냐!"

     객실로 안내를 하고 방값을 지불할 때에 또다시 그가 건들거렸다.
     방값을 받고 돌아서던 진수가 순간 획 돌아섰다.

     "손님! 들으시기에  기분 나쁘시겠지만 아무에게나 그렇게 반말하는
   버릇 좀 고쳐 주세요. 듣기에 기분이 불쾌하군요."

     잠시의 기분을 참지 못한 것이 화근이었다.
     순간, 돌아서던 사내의 손바닥이 진수의 뺨으로 날아들었다. 이유는
   숙녀 앞에서 무안을 주었다는 것이었다.
     진수는 입술을 꽉  깨물고 참았다. 손님과 문제가 생기면 불리한 것
   은 언제나 종업원이었다.  또한 업주들은 그 누구도 문제가 생겨 경찰
   들이 드나드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에 그날 이후, 진수는 모두에게 톡톡히 복수를 하기로 했다.
     비록 돈을 벌기 위해 꾹  참고서 일년 동안 일은 해 왔지만 팔자 좋
   게 러브호텔을 찾는  사람들이 그동안 얼마나 증오스러웠던가? 모두가
   열심히 땀흘려 일하고  있을 벌건 대낮에 그것도  대부분 자신의 어린
   딸과 같은  새파란 계집아이들을 끼고서, 보기에도 그 얼마나  역겨운
   일들이었나..
     며칠후, 서울 청계천 전자상가를 찾은 진수는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
   다가 한 가게에서 담뱃갑 만한  크기의 최신형 소형 비디오 카메라 한
   대와 부속품들을 구입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자신이 일하고 있는 러브호텔로 돌아온 직후, 칠
   층의 제일 복도 끝쪽 객실안 커튼 사이에 교묘히 위장을 한 후, 사 온
   비디오 카메라를  설치하였다. 그리고는 그 뒷편에 있는 자기  숙소의
   텔레비전과 비디오로 선을 연결해 놓았다. 그러다가 돈이 있어 보이고
   바람을 피우는 것이  분명한 듯한 남녀가 호텔로  들어서면 그 방으로
   태연히 안내를 하고 재빠르게  숙소로 돌아와 텔레비전을 켜고 비디오
   로 녹화를 하는  것이다. 자신들의 알몸이 찍히는 줄도 모르고 들어선
   남녀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정사를 벌일 것이다.
     그 첫 케이스로 걸려든 것이 모 전자 회사의 사장이었다.
     그는 오십 줄의 나이에 땅딸한  체격의 소유자 였지만 스물을 갓 넘
   긴 여자와 온 것으로 보아서 바람을 피우는 것이 분명 하였다. 주차장
   에 주차해 놓은 승용차 문을  열고 자동차 등록증을 꺼내어 주소와 이
   름을 알아내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약 석달 후,  철저하게 바람을 피우고 돈이 많아 보이는 사람들로만
   골라 약 오십 여명의 정사  장면을 비디오로 찍고 리스트를 작성한 후
   진수는 서서히 행동을  개시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오늘 그 첫 작
   전을 무사히 마친 것이다.
     커피 한 잔을 서서히 들이킨 진수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커피숍을
   빠져 나왔다.
     어차피 그런  인간들은 쓰레기들이다. 돈  좀 있다고 우쭐대고 자기
   자신들만 알고 집에서 자식을  속이고 마누라를 속이고 짐승처럼 욕망
   에 쫓겨 사는 인간들...그런 작자들의 돈을 뜯는다고 해서 그리 큰 잘
   못은 아닐 것이다.
     안절부절하지 못하던 아까의 그 사내가 떠올라 이내 실소가 터져 나
   왔다. 그렇게 마누라가 무서우면 왜 숨겨 가며 몰래 바람을 피울까. 남
   자들이란... 하지만 돈이라면 자신의 육체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내
   던지는 요즘의 젊은 여자들이 더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아
   버지와 같은 남자들의 가슴에 안겨 그 더럽고 추한 몸뚱이들을 흔들어
   대면서 그녀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들을 할까. 물질 만능이 가져온 참
   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이제부터 그 벌레 같은 년놈들에게 따끔한 맛을 보여 주리라.
     진수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대략 스물 다섯개의 전화번호와 신상이
   적힌 종이 쪽지를 소중하게 매만졌다.
     하나에 삼백만원씩만 잡아도 스물 다섯 명이면 칠천오백만원의 거금
   이 생길 것이다. 그러다가 좀 맘씨 좋은 사람을 만나면 오백에서 천만
   원 까지도 액수를 높여 보리라. 돈 몇백 만원에 함부로 신고를  할 사
   람은 없을 것이다.
     늘 고생만 시켰던 어머니. 그 돈으로 실패한 사업도  일으키고 못다
   한 효도도 해야겠다.
     얼마를 걷던 진수는 한적한  골목길에 이르러 공중전화 부스로 들어
   섰다. 소뿔도 단김에 빼라고 하지 않았던가.

     "여보세요. 거기 박전무님 댁이죠?"

     "네? 그런데요. 실례지만 누구 신지요?"

     "예, 안녕하세요. 저 같은 회사에 일하고 있는 미스터 김입니다. 급
   한 일이 있어서 그런데 전무님좀 바꿔 주세요."

     "아, 그러세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잠시후 사십 줄쯤  돼 보이는 사내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흘러
   나왔다. 진수가 두 번째로 점찍은 모 대기업의 전무였다.

     "여보세요? 전화 바꿨습니다."

     "이봐요? 정신 차리고  잘 들으세요. 지금 나는 당신이 불륜을 저지
   른 정사 장면이 담긴 비디오 테이프를 보관하고 있습니다."

     "이봐! 그게 무슨 소리야? 테이프라니..."

     "지난 달, 토요일에 들렀던 러브호텔을 기억하지요?"

     "헉!"

     "그날 방에서 비밀리에 찍은 비디오 테이프를 내가 보관하고 있습니
   다. 삼백을 준비해서  내일 종로 삼가 전철역 지하 매표소에서 기다리
   세요. 원한다면 테이프를 돌려주겠습니다.저녁 여섯 시에 반드시 혼자
   나와야 합니다."

     "그... 그럽시다. 제발 테이프를 꼭 돌려주시오."

     의외로 일이 쉽게 진행되는 느낌이었다. 바람을 피웠으니 어느 누구
   인들 테이프를 두려워하지 않으랴. 한심한 인간들...
     다음날 저녁 여섯시,  모자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 종로 삼가 전철역
   으로 향한 진수는 가방을 들고 서성이고 있던 사내를 발견하고 미소를
   머금으며 다가갔다.

     "물건은 준비되었습니까?"

     "그러문요. 자 여기!"

     순간, 손을 내미는  진수의 팔에 사내가 재빠른 동작으로 수갑을 채
   웠다. 잠복 중인 형사였다.

     "앗! 어떻게 된 일이야! 이거 놔! 놓으라고!"

     발악을 하는 진수에게 낯선 사내 하나가 다가왔다.

     "그래요, 이놈이  틀림없어요. 그날 그 호텔에서 방 안내를 했던 놈
   이. 이봐! 그 테이프는 어디에 있지?"

     "감히 신고를 하다니... 약속이 틀리잖아?..."

     "이봐! 이 미친 녀석아, 우린 부부야.. 나이 차이가 좀 나서 그렇지..
   넌 잘못 짚었던 거라구. 집에서 노부모님을 모시고 살기에  여관을 이
   용했을 뿐이야.  마누라가 워낙 소리를 잘 질러서. 젠장, 그것도 죄가
   되나?"

     "......"

     모든 것을 체념한 진수는 순순히 형사들의 연행에 따랐다.

     이 이야기는 경기도 인근에  있는 한 러브호텔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이야기이다.
     실제의 범인은 의외로 선한  마음씨를 가진 청년이었고 돈보다는 세
   상에 하나의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백을 했다.
   그리고 사건 당일 경찰의  잠복근무를 눈치채고도 도망가지 않고 순순
   히 연행되었다고 한다.
     그 후로 대낮에 러브호텔에  들리는 여관족들은 방에 들어서면 혹시
   나 숨겨 놓은  카메라가 있지나 않을까 살피는  것이 유행처럼 되었고
   세상에 하나의 경종으로써  이 사건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게 되었
   다.
     그리고 연출된 것이 아닌 실제의  생생한 포르노를 담은 그 많은 비
   디오 테이프들이 후에 누구의  손에서 어떻게 처리되었는지는 아직 세
   간에 알려지지 않고 있다.




     ☞둘째 이야기: 비극의 아버지와 딸


     날씨는 구즐구즐 오후부터 쉬지 않고 가을비가 흩뿌리고 있었다.

     "제기랄,  이놈의 날씨가 또 술생각을 하게 만드는구먼."

     퇴근을 위해 양복  상의를 챙겨 입던 김과장은  사무실 창문 너머로
   뿌옇게 흐려 있는 서울 하늘을 바라보며 투덜거렸다.

     "과장님! 퇴근 안하세요?  저희들 먼저 들어갈께요."

     느그적 거리는 과장의 동작을 못 기다리겠다는 듯 여직원인  미스백
   과 미스홍이 먼저 조르륵 사무실의 문을 열고 달려나갔다.

     "쯧쯧, 요즘 젊은것들은 싸가지가 없어서 탈이라니까."

     김과장은 다소 불쾌한  듯 그녀들이 분별없이 풍기고  간 독한 향수
   냄새의 뒤를 핥으며 사무실을 나왔다.

     "어이, 김과장! 날씨도 그런데 한잔 안 하려나?"

     마찬가지로 퇴근을 하다가 복도에서 마주친 영업부 민부장이 어깨를
   툭 치며 말을 건넸다.

     "아 아닙니다. 민부장님, 오늘이 마침 마누라 생일날 이라서요."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김과장은  자기 자신이 그렇게 능숙하게 거짓
   말을 하고 있음에 놀랐다.

     "아- 그래, 그렇다면야 할 수 없지. 대머리라도 꼬셔 보는 수밖에."

     대머리라 불리우는 영업2부 신과장은 나이 사십을 갓 넘긴 나이답지
   않게 전직 모 대통령처럼  대머리가 일찌감치 벗어진 민부장의 유일한
   술 파트너 였다.

     "흥흥, 한참을 젊고 혈기 왕성할 나이를 술로 보내다니...쯧쯧 불쌍
     하도다."

     저만치 사라지는  민부장을 바라보며 김과장은  흘흘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김과장의  머릿속엔 이미 오늘을 멋지고 황홀하게 보낼 훌륭
   한 프로젝트가 완벽하게 계획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 저런 생각들을 하던 그는 잠시 집에서 바가지를 들고 용감무쌍
   하게 안방을 지키고 있는 푹 퍼진 마누라를  떠올렸다. 지금부터 추진
   해야 할 자신의 프로젝트에 대한 일면의 양심의 가책 때문이었을까.
     그래도 시집 올  때만 하여도 예쁘다는 소리를  숱하게 듣던 그녀였
   다. 그러던 것이 굴비 새끼처럼 세 딸을 줄줄이 낳아 버리더니 이제는
   아예 몸매 따위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고구마 자루처럼 푹 퍼져 버린
   것이었다. 거기에다가   식욕만 왕성했으면 별 문제가 될 것이 없었지
   만 밤의 욕구는 그것 이상으로 왕성하여 늘상 김과장을 의무 방어전으
   로 내몰았다.

     "크~ 지겨운 놈의 마누라."

     회사를 한참을 벗어나 한적한  골목에서 택시를 내린 김과장은 전에
   도 두어 번은 왔을 법한  능숙한 폼으로 근처의 포장마차를 찾아 들었
   다.

     "어머머 김사장님 오셨네. "

     자신이 꽃다운 시절부터 청상  과부 였다고 누누이 강조하던 오십대
   의 포장마차 여주인이 그런 그를 알아보고 반갑게 아는 채를 했다.
     우연히 포장마차를 찾았던 어느날 작은 중소기업의 사장이라고 자신
   을 소개했던  것인데 그녀는  그 말을 진짜로 알아들은 모양  이었다.
   하지만 듣기에 그리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기실 이런 곳 아니면 언제
   말년 오십 줄을 바라보는 과장이 사장님 소리를 들어보랴 만.

     "그래, 김천댁은 자식도 없이 내내 혼자 살었수."

     그의 단골매뉴인 소수 한 병에 골뱅이를 시켜 놓고 김과장은 형식적
   인 물음을 던졌다.  머릿속에는 잠시 후의 프로젝트에 흥분해 하며 저
   만치한쪽 길모퉁이에 비를맞고 서있는 `로망스'란 네온 간판을 설레이
   는 마음으로 바라볼 따름 이었다.

     "에그 차라리  혼자 였으면  이놈의 팔자가 이렇게 사납지나  않지.
   왠수같은 자식놈 하나 때문에 녀석 대학 뒷바라지하며 이렇게 살고 있
   지 않겠수."

     흠. 열녀 났구먼.  잠시 그렇게 생각하던 김과장은 서둘러 소줏잔을
   비웠다. 적당히 기분  좋게 취해야만 그의 목표는 100%  달성할 수 있
   는 터였다.

     "그래, 김사장님은 자식이 어떻게 되시우?"

     김천댁이 코를 훔치며 물었다.

     "나야 딸만 오지리로 셋이니 아들 하나만도  못하지. 막내가 이제야
   고등학교 3학년이고 두 년이 다 대학굘 다니니.. 그럼 뭐하나. 멀쩡하
   게 키워 놓으면 언제고 훌쩍 떠나면 그만인데."

     "정말 맞는 말이지요. 요즘 딸 키워 봤자 소용이 없다니깐."

     적당히 술이 오르자 김과장은  뚱뚱하고 자그마한 키를 흔들며 벌게
   진 얼굴로  포장마차를 나왔다. 거리는  어둠이 내려앉아 색색의 네온
   등들이 더욱더 그의 마음을 설레게 하였다.
     잠시후 이리저리 골목길을 휘두르던  김과장은 조금은 멋쩍은  얼굴
   로 로망스라고 쓰여진  간판 안으로 빨려 들듯 들어갔다. 로망스는 일
   종의 러브 호텔이었다.

     "아 사장님 아니세요. 기다렸습니다."

     이십대 중반의 보이  하나가 그를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를 했다. 잠
   시후 방으로  안내된 김과장은 다짜고짜로  보이의 허릿춤으로 시퍼런
   만원 짜리 한 장을 찔러 넣으며 거칠게 속삭였다.

     "야. 너 아까 한 약속 잊지 않았겠지."

     "아 김사장님도 성미도  급하셔. 금방 불러 드릴 테니 잘좀 해 주십
   쇼."

     주머니의 팁을 확인한 보이 녀석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야야, 근데 말이다. 정말 스므살을 갓 넘긴 영계에다가 에 그 뭣이
   냐. 대학생이 맞는감."

     "아 그럼요. 제가 돈 받고 뭣하러 거짓말하겠습니까. 다들 알아주는
   일류대에 쪽쪽 빠진  애들이에요. 요즘은 그렇게 감쪽같이 하루에  한
   두껀씩 아르바이트 삼아 몸을 파는 애들이 한두 명이 아니라니까요 그
   래서 자기 옷도 사 입고  용돈도 하고 학비도 내고 남자 친구 밀린 하
   숙비도 내주고. 요즘 애들이 얼마나 약았는데요."

     "캬~ 기가 막힐  노릇이군. 여기 돈 있으니 어디 그 중에서 제일 기
   가 막힌 놈으로 한번 불러 봐라."

     "예, 예, 그러문입쇼."

     보이가 나간 후 김과장은 설레이는 마음으로 욕조에 물을 받고 옷을
   훌라당 벗어 던진 채 침대에 걸터앉아 담배를 피워 물었다.
     사실 김과장이  이 여관에 단골 한지도  어언 일년이 다 되어 갔다.
   마누라한테 실증이 나도 벌써 날 나이였지만 말년 과장에 변변치 못한
   외모 때문에 그럴싸한  바람 한번 피워 보지  못하고 지내다가 우연히
   알게된것이 이곳이었다. 전에는 주로 전문 콜걸들과 일부 집안이 가난
   한 여성들이 낮엔 회사에 다니고  밤엔 몸을 팔았고 그 맛에 그럭저럭
   회포를 풀며 지내 온  그였었다. 그러던 오늘 낮에 그 여관 보이 녀석
   으로부터 정말 반가운 전화가 왔던 것이다.

     "아 글쎄 말입니다. 대학생 몇년이서 그 짓을 하겠다고 찾아왔지 뭡
   니까. 얘기는 들었지만 이렇게 빨리 재발로 걸어 올 줄은 몰랐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특별히 김사장님께 전화 드린 겁니다."

     "어 어 험. 그래 그래."

     전화를 받으며 김과장은 떨리기까지 했다. 세상 정말 말세로다.  돈
   이면 못할 것이 없다는 더러운 놈의 기집년들. 어찌됫든 좋도다. 그래
   야 우리 같은 놈들도 영계 구경하며 살맛 나게 세상을 살지...
     대충 뜨거운 물로 샤워를  끝마친 김과장은 흐뭇하고 흡족한 기분으
   로 침대에  누워서 잠시 후의 일을  회상했다.  꼬깃꼬깃 마누라 몰래
   감추어 두었던 비상금을 화대비로  모두 날렸지만 전혀 아깝지가 않았
   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똑똑-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낮게 들려
   왔다.

     "저어-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스물도 채 되지않은듯한 가녀리고 어린 목소리 였다.

     "네에, 들어오시죠."

     그는 다소 점잖은 목소리로  그러나 두방망이질 치는 가슴을 억누르
   며 다가가 문을 열었다.
     붉은 취침등밑에 드러난 소녀의  옆모습은 보이의 말 그대로 어리고
   청초해 뵈는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그녀는 창피했음인지 뒤로 돌아서
   서 입고 있던 옷들을 한커풀 두커플 벗어 던졌다. 불빛을 타고 인어같
   이 완벽한 그녀의 나신이 마치 꿈을 꾸듯 김과장 앞으로 넘실거렸다.

     "아악... 더 더는 도저히 못참겠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김과장은  방안의 불을 환하게 바꾸고는 본능
   적으로 달려들어 그녀를 껴안았다.그러나 다음 순간, 까무러치듯 놀란
   두사람은 비명을 지르며 잡았던 몸을 놓고 뒤로 나자빠졌다.

     "앗- 아.. 아빠얏!"

     "아악.. 미...미영아..."

     이 참으로 우연하고도 불행한 비극의  덫에 걸린 두 부녀가 그 다음
   에 어떻게 되었는지는 전해 듣지 못했다.
     당시 종업원의 말을 빌리면 그 김과장이란 사내는 딸이 방문을 밀치
   고 도망치듯 여관을 빠져나간 후에도 한참을 멍하니 줄담배를 피워 대
   며 그 자릴 떠날 줄을 몰랐다고 한다.
     애지중지 금지옥엽 키워 놓은 딸이 그렇게 물질 만능에 쫓겨 타락해
   가고 있음에 그는 눈물을 흘렸으리라. 더군다나 자신 또한 아버지로서
   의 모든 인격을 무너트린 채  그렇게 더럽고 추한 모습을 딸에게 들키
   고 말았으니...
     물론 이 이야기는 한때 경제  부흥을 타고 소비 문화가 만연할 무렵
   인 80년대 후반의 이야기이다. 지금은 여관이나 러브 호텔에서 전화를
   받고 몸을 파는 이러한콜걸(call-gell)들이 대부분단속으로 사라진 것
   으로 알고 있다.
     이 이야기를 교훈 삼아 우리들은 순간적인 성의 쾌락이나 돈에 눈이
   어두워 자신의 소중한 신체를 타락시키는 일이 얼마나 위험 천만한 일
   인지를 반드시 깨달아야 할 것이다.
     죄를 지으면 그 결과는 반드시 따르기 마련인 것이다.




     ☞셋째 이야기: 남자 좀 불러 주세요


     "아저씨! 여기, 남자 좀 불러 줄 수 있죠?"

     호텔 객실에서 걸려 온 여인의 전화에 프런트 데스크에서 전화를 받
   던 성일은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옛! 뭐... 뭐라고요?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시겠어요?"

     "아이, 이 아저씨 눈치 되게 없기는...이 방에 남자 하나 불러 달라
   고요."

     "아 예 손님, 그런 건 곤란하군요. 이  밤에 어디 가서 남자를 불러
   드립니까."

     "아니, 여관에 남자가 그렇게도 없단 말입니까?"

     "남자들이 없기야 하겠습니까  만, 숙박 업소에서 매춘 행위를 알선
   하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습니다 손님."

     전화기에서 잠시 가느다란 한숨이 흘러 나왔다. 목소리로 보아서 여
   인은 서른 중반쯤의 나이 인 것 같았다. 그런데 남자도 아니고 여자가
   여관에 와서 남자를 불러 달라니. 성일은 의아스러웠다.
     기실 남자들이 술 한잔씩을 걸치고 췻김에 여관에 와서 여자를 찾는
   일은 이따금씩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여자가 남자를 찾는 일은 여관
   종업원 생활 10년 경력의 성일로서도 처음 당하는 일이었다.
     잠시 말을 끊었던 여인이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이보세요? 이 아저씨  되게 멋대가리 없네. 누가 남자를 알선해 달
   라고 했어요? 그냥 아무라도 좋으니 남자 하나만 불러 달란 말입니다.
   화대를 주고받는 일도 아닌데 뭐 법에 걸릴게 있다고 자꾸 그래요"

     "아... 예 예, 잠시 후에 다시 전화를 드리죠."

     갑작스레 야기된 사태에 서둘러 전화를 끊은 성일은 손님 안내 일을
   보고 있는 진수를 불렀다.

     "이봐! 미스터 조. 303호 손님 대체 누구야?  여자 손님인데 남자를
   불러 달라는군."

     군대를 갓 제대하여 아직 머리가 짧은 스포츠 머리 그대로인 진수가
   마악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데스크로 걸어왔다.

     "남자를 불러 달라고요? 세상에 별꼴을 다 보는군요"

     ".그렇게 말하지 말고  자세히 설명을 해봐! 잘하면 좋은 건수가 될
   수도 있잖아."

     "그 손님, 전에도 가끔씩 남자와 오던 손님입니다.그런데 오늘은 이
   상하게 혼자 왔다 했더니 그 남자에게 바람을 맞았나 보군요."

     "제길, 그럼 맨 정신으로 그런 단 말야. 술도 안 마시고..."

     "아니, 술은 들어올 때부터 조금 취해 있었습니다.그리고 한시간 전
   에 또 맥주 몇 병을 시켜서 가져다 주었고요."

     "그래, 그래도 그렇지...."

     "생각 있으면 형이  한 번 가보시구려.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불쌍한
   아줌마의 외로움을 잠시 덜어 주는 것도 다 보시가 아니겠어요."

     "이런 큰일날 소리를 하고 있군, 우리 마누라 알면 집에서 쫓겨나는
   꼴을 보려고 그래. 아무튼 내가 이 불야성 호텔에 입사한지 어언 10년
   의 세월이 흘렀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야. 그리고 여관에 와서 혼자 저
   러는 여자들  잘못 건드리면 꼭 뒷  탈이 나기 마련이지. 전에도 그런
   경우가 있었어. 술에 취해 남자의 등에 업혀 들어와 강간을 당해 놓고
   는 술이 깨자 종업원들의 소행이라고 벌컥 신고를 했지 뭐야! 결국 그
   남자 친구의 범행으로 밝혀져  누명은 벗었지만 의외로 한심한 여자들
   이 부지기수라구."

     성일의 말에 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군대를 제대하고 직장을 구하던 차에 우연하게도 숙박업소로 발길을
   들여놓기는 하였지만 아직은 모든 것이 서툴기 그지없었다. 늘상 그런
   진수에게 자랑스레 10년 경력을 내세우는 성일 이었다.

     "형 말이 아무래도  일리가 있군요. 그렇게 생각하니 여자들이 무서
   워지는군요."

     "그래, 이 여자도 적당히 달래 보아야겠군.괜히 건수 잡으려다 신세
   망치는 수가 있지."

     성일은 곧바로 303호로 전화를 했다.

     "예, 손님 프런트 데스큽니다. 제가 알아보았는데요.아무래도 좀 곤
   란하겠군요. 직원들도 모두 지금 바쁜 시간 이라서요. 외로우시더라도
   한숨 푹 주무시면 나아지실 겁니다."

     잠시후 여인의 성난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 아저씨가 지금 장난을 하나?"

     "네. 장난을 하다뇨?"

     다시 여인의 한숨이 흘러 나왔다.

     "알았어요. 알았으니까 신경 쓰지 말고 일이나 잘 하시고 여기 맥주
   나 몇 병 더 같다 주어요. 마시고 푹 잘 터이니..."

     "예. 그거야 어렵지 않죠. 곧 보내 드리겠습니다."

     괜히 좋은 건수  하나를 놓치는구나. 전화를 끊은 성일은 후회의 마
   음도 들었지만 곧  자신의 결정이 현명했다는 판단을 했다. 이런 여자
   잘못 건드려 낭패를  본 경험이 어디 한두번 이었던가. 성일의 눈가에
   낯선 여인의 신비로운 향취가 아련히 떠올랐지만 이내 생각을 지워 버
   렸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궁금하다는 듯 진수가 다가오며 물었다.

     "꿈깨시고 일이나 해. 다 끝났으니까. 맥주나 몇 병 더 가져다 달라
   는군. 마시고 자려나 보지. 서서히 열기를 식히면서."

     "하하하...맥주라... 그건 얼마든지 줄 수 있죠."

     젠장. 직업을 바꿔야겠군.  어쩌다가 내가 이런 여자들의 술 뒷바라
   지나 하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을까.  이래봬도 명색이 군대까지 갔다
   온 몸인데...
     냉장고에서 맥주 두 병을  꺼내 든 진수는 곧바로 303호실로 올라갔
   다.

     "손님. 룸 서비습니다."

     "잠시만요."

     노크를 하자 방안에서 끈적끈적한 여자의 대답이 이어졌다.

     "들어오세요."

     "앗!"

     다음 순간, 쟁반에  맥주를 받쳐들고 문을 열던 진수는 당황해 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  여인이 하얀 속옷 위에 아이보리색 슬립만을 걸친
   채로 태연하게 문을 열고는 빙긋이 웃고 있는 것이 아닌가.

     "소... 손님... 옷을 입으셔야죠."

     등으로 식은땀이 흘렀다.
     군대를 제대하고 어언 꺾어진  20대라고 자부하던 진수 였지만 그동
   안 여자 경험이란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 였던지라 얼굴이 붉어
   지며 뒤로 주춤거렸다.

     "에이 왜  이래 창피하게, 그 나이에 여자 속옷 한 두번  보는 것도
   아닐 텐데. 누가 잡아먹기라도 하나 그 표정은 또 뭐야.복도에서 그렇
   게 서 있지 말고 어서 방으로 맥주를 가지고 들어와요?"

     여인의 당돌한 말에 기선을 제압 당한 진수는 엉겁결에 맥주를 들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빨간 색 스탠드 불 하나만이  켜져 있는 방안은 마치 진수를 기다렸
   다는 듯 색색한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탁자 위에 맥주를 내려놓고 잠시  여인의 육체에 넋을 잃고 서 있는
   진수에게 그녀가 속삭이듯 말했다.

     "아 뭐 해요 앉지 않고, 건물 바치고 서 있으려고 그래요?"

     "예. 저는 바빠서요. 내.. 내려가 봐야 하거든요."

     "참나, 누가  잡아먹기라도 한답디까. 애인한테는 바람을 맞고 혼자
   처량히 있으려니 잠이 안 와서 그래요. 별다른 뜻은 없으니 이양 들어
   온거 맥주나 한잔 마시고 가세요?"

     "근무 중엔 술을 못 마십니다."

     "에이 근무는 무슨,  여기가 철책선 이라도 된답니까? 딱 한잔만 하
   세요. 더는 권하지도 않아요"

     여인은 영화 속의 샤론스톤처럼 다리를 꼬며 자리를 고쳐 앉았다.
     그때야 비로서 진수는  여인을 천천히 흩어 볼 수 있었다. 자그마한
   키에 어깨에까지  늘어트린 긴 생머리.  서른 중반쯤의 나이답지 않게
   매우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을 바람 맞춘  남자는 도대체 누구일까. 그런
   생각을 하며 진수는 여인의 맞은편 의자에 걸터앉았다.

     "제가 참 바보처럼 보이죠. 미친 여자 같지 않아요?"

     진수의 잔에 맥주를 부으며 그녀가 말문을 열었다.

     "사실은 제 남자는 지금쯤 다른 여자를 만나 침대를 뒹굴고 있을 거
   예요. 오늘 여기서 날 만나기로 해 놓고는 개자식, 그전부터 따라붙던
   젊은 년이 만나자고 하니까 그리고 달려간 거죠. 내겐 이렇다 할 연락
   한 번 하지 않고,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가 있지요. 뻔히 기다리고 있
   을 줄은 알면서.그래서 난 배신감에 몸부림을 쳤지요. 아까 남자를 불
   러 달라고 한건  그렇게 라도 하지 않으면 도저히  참을 수가 없을 것
   같았어요. 죽고 싶은 그 심정 이해하시겠어요? 그렇게 라도 해야 마음
   속에서 용서가 될 듯 싶었지요."

     "그런 딱한 사정이 있었군요. 전 그런 줄도 모르고..."

     진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술잔을 넘겼다.  하지만 성숙한 여인의 반
   나신을 바로 코앞에 두고 태연하게  앉아 있자니 속에서 한 움큼씩 불
   길이 솟구치는 느낌이었다.
     의외로 여인의 사유는  간단했다. 애인의 바람에 맞바람으로 복수를
   하고 싶은 심리. 여인은  오직 그 생각으로 머릿속이 꽉 차 있을 것이
   다. 여인에겐 지금 남자가 욕망의 대상이 아니었다. 오직 복수의 대상
   이었던 것이다. 자신의 육체를 쉽게 내 던질 정도로 여자가 한을 품으
   면 이토록 무섭단  말인가. 하지만 이런 식의 복수라니 참으로 이상한
   복수가 아닌가.
     진수는 일도 잊어버리고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그런데 총각은  몇 살이나 먹었지요?  얼굴도 꽤 미남이군요. 몸도
   튼튼해 보이고..."

     그러고 보니 마른침을 삼키는 건 진수만이 아닌 듯 했다.
     여인의 눈길이 묘하게 진수의 아래위를 ㅎ고 지나갔다.

     "예. 전 스물 여섯입니다. 몸이야 군에서 3년동안 체력 단련만 했으
   니 이리 될 수밖에 없죠. 전엔 약골 이었걸랑요."

     "그럼 여자 경험은 있겠군요. 얼굴이 이렇게 미남이니  당연히 여자
   친구도 있겠고..."

     "그 그야... "

     진수의 얼굴이 벌개짐을 여인은 놓치지 않았다.
     여인이 지금 무엇에 목적을 두고 있는지를 직감한 진수의 호흡은 갈
   수록 빨라져 갔다. 여인은 진수의 젊고 건장한 육체를 보자 복수심 위
   에 또 하나를 얹어 색기마저 발동했는지도 몰랐다.
     단숨에 앞에 놓인 술잔을 비운  여인이 갑자기 입고 있던 얇은 슬립
   을 벗어  던졌다. 그리고 몸을  일으키던 그녀가 술기운이었는지 몸의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괘... 괜찮으세요?"

     여인의 의도 따위를 생각하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달려든 진수가 여
   인의 몸을 부축했다.

     "아, 어지러워요. 저 좀 침대로 부축해 주시겠어요. 쉬고 싶군요."

     여인의 봉긋 솟아오른 젖가슴이  진수의 얼굴을 짓누르며 뒤이어 풋
   풋한 살내음이 코를 자극시켰다. 그녀의 몸은 익을 대로 익어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따 주기를 기다렸던 농익은 과일처럼.
     이미 이성을 잃은 진수는 용기를  내어 그녀의 몸을 침대에 눕힌 후
   젖가슴으로 손을 옮겼다.
     아.. 짧게 신음 소리만을 토할 뿐 그녀는 반항하지 않았다. 마치 모
   든 것을 기다렸다는 것처럼 오히려  등뒤로 그런 진수를 힘껏 끌어 앉
   는 것이 아닌가?

     그런 모든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러브호텔 불야성의 밤은 더욱 깊어
   가고 있었다.




     ☞넷째 이야기: 립스틱으로 쓴 유서

     사람들이 자살을 할 때 그  죽음의 순간을 택하는 장소도 참으로 다
   양하다.
     멀리 여행을 떠나서  낯선 여행지의 강변이나 호텔 방, 혹은 유람선
   의 달리는 뱃전 위에서  그 생에 마감의 순간을 가질 수도 있고, 더러
   는 집에서나 아니면 자신이 처한  가장 어려운 환경의 한 가운데가 될
   수도 있다.
     그 여러 유형의  죽음 가운데 낯설은 여관방에서  생의 죽음을 택한
   한 여인의 소설처럼 슬픈 이야기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잠실 종합운동장을 지나 한 정거장을 더 내려가면 신천 전철역이 나
   오고 그 뒤로는 최근 요  몇 년 사이 젊은이들의 거리가 되어 버린 화
   려한 유흥가 골목이 펼쳐 있다.
     이 곳은 또한 인근의 야구장과 한강 시민공원 롯데월드 등이 인접해
   있고 편리한 교통 여건 때문에 많은 젊은이들이 모여들어 일명 뚜벅이
   거리라고 불리우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렇게 유흥 시설들이 즐비하다 보면 시내 어디를 가도 공통
   적인 것이기는 하겠지만 한 블록쯤 떨어진 거리에는 반드시 화려한 네
   온 등들을 앞세운 러브호텔의  불빛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기 마련이
   다.
     이 곳도  마찬가지여서 각종 술집과  포장마차 노래방 단란주점등이
   늘어선 거리를 걸어  올라가다 보면 그 길이  끝나는 지점을 기점으로
   하여 여관들이 늘어서 있다. 마치 '취하고 지친 그대들을 기다렸노라'
   하고 말하듯 사랑하는  연인들이 기분 좋게 한  잔씩을 걸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골목길을 나서면 자연스레 여관이 그 앞을 가로막는다.
     그 어느 늦은 가을, 가을비가 을씨년스럽게 흩뿌리던 날이었다.
     자정이 가까워지자 영업 시간이 끝난 술집의 손님들이 하나 둘씩 가
   게문을 나와 삼삼오오 집으로 혹은 포장마차로 흩어질 무렵 술에 잔뜩
   취한 연인 한 쌍이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흐느적거리며 골목길을 거슬
   러 올라가고 있었다.
     날씨는 제법 쌀쌀했다. 여인은 검정색 투피스 차림에 이십대 초반의
   청순하게 생긴 얼굴이었고 그녀의 팔을 부축한 남자는 큰 키에 귀공자
   풍의 얼굴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잔씩 걸친 술로 인하여 취해 있었기는 마찬가
   지 였고 어느 누구도 두 젊은이를 주목하는 사람은 없었다.
     여인은 술에 취해 몸을 못 가누기는 했지만 제법 또랑또랑한 목소리
   로 남자에게 애원하고 있었다.

     "영준씨! 제발... 절... 절 떠나지 마세요?  네, 부탁이에요.... 흐
   흑..."

     "미혜... 어쩔 수 없잖아... 부모님의 뜻인걸... 그리고 날 이젠 잊
   어 줘... 넌 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야..."

     "흥, 영준씨가 떠나면 전 차라리 죽어 버릴 거예요.... 영준씨는 부
   모님의 뜻이라 하지만 사실은... 저를... 사랑하지 않고  있어요 그렇
   죠?"

     "아니야, 그렇지 않아... 난 누구보다도 미혤 사랑했다구.. 다만 지
   금은 부모님의 뜻을 거절할 수 없기 때문이지.... 난 그분들의 희망이
   야."

     쓰러질 듯 비틀거리며 걷던 두 남녀는 잠시후, '파라다이스'라고 써
   진 모텔의 현관문을 밀치고 안으로 들어갔다.

     "비가 많이 오나 보군요?"

     두 남녀를 아래위로  흩어 보던 종업원 미스터  박은 형식적인 말을
   건네며 엘리베이터에 그들을 태웠다.

     "아저씨! 몇 층입니까?"

     "예, 6층 607호실입니다. 잠시만 기다리시지요?"

     꼭 부둥켜안은 남녀는 꽤 피곤한 얼굴이었다.
     잠시후 방으로 그들을 안내한 미스터 박은 별 생각없이 요금을 받은
   후 방문을 닫아 주고 프런트로 내려왔다.
     그리고 긴 밤이 흘렀다.
     다음 날 오전  12시, 통상 이때쯤이면 숙박 업소의 대부분은 그때까
   지도 방을 비우지 않은 손님들에 한하여 일일이 전화로 체크아웃을 시
   킨다. 청소를  시작하고 새로이 들어  올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함에서
   였다.
     일일이 체크판을 들고 나가지  않은 손님들을 체크하던 미스터 박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상하네. 607호 말이야. 안에 손님이 분명히 있는데 전화를 안 받
   는단 말씀이야."

     "잠에 취해서 그렇겠지. 다시 한 번 전화를 해 보세요."

     걸레질을 하던 프런트.케샤 미스 리가 거들었다.

     "글세.. 어제 저녁에 술에 취해서 들어오기는 했지만 지금쯤이면 술
   이 깨고도 남았을 시간인데 이상하네."

     "문을 마스터키로 따 보면 되잖아요?"

     "에이, 누가 그걸 모르나.  손님 방 함부로 열었다가는 큰일 나니까
   하는 소리지. 가뜩이나 술 취해서 믈건 잃어버리면 종업원 소행이라고
   우기고 신고하는 판인데, 더더욱 여자 혼자 있는 방 열었다 간 어떻게
   되는지 알아. 잘하면 강간범으로 몰리는 세상이라구... "

     "훗훗, 하긴 그렇기도 하겠군요."

     "에잇! 더러워서. 빨리 돈 벌어서 뭐라고 차리던가 해야지.그나저나
   607호실은 문제군. 문을 열어 보는 수밖에 없겠는데. 요즘 젊은것들은
   문제야. 대낮인데 출근도 안 하나."

     미스터 박은 투덜거리며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잠시후 607호실 앞에 이른 그는 다시 한 번 소리내어 문을 두드렸으
   나 안에서는 아무런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젠장, 전쟁이 일어나도 모를 판이군."

     조심스레 마스터키로 객실 문을 연  미스터 박은 손님이 깰 까봐 조
   심하면서 마치  영화 속의 미 정보국  CIA요원이 된 기분으로  안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커튼이 드리워진 방 안은  텅 비어 있었다. 다만 문 입구에 여자 구
   두 한 켤레가 아무렇게나 놓여져 있었으나 손님은 없는 듯 했다.

     "젠장, 여기가  무슨 쓰레기장 인줄 아나. 줄줄이 버리고 가게스리.
   그나저나 괜히 놀랬네."

     완전히 손님이 없음을 확인한 그는 투덜거리며 커튼을 열어 젖혔다.
     여관에 와서 새로 산 신발이나 옷가지들을 갈아입고 헌 것들은 버리
   고 가는 경우는 그전에도 종종 있던 터였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이상한 냄새가 조금씩 풍겨 나오기 시작했다.

     "앗, 그런데 이게 무슨 냄새지?"

     갑자기 풍기는 역한 비릿내에 깜짝 놀란 미스터 박은 조심스레 욕실
   문을 열었다. 아악- 다음 순간, 그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털썩 주저
   앉았다.
     닫혀진 욕실 안에는 참으로 처참한 풍경이 벌어져 있었다.
     긴 머리를 어깨에까지 늘어트린  여인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신으로 동맥을 절단한  채 욕조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던 것
   이다. 시간이  얼마 흐르지 않았음인지  물 속에서는 아직도 더운피가
   뭉클거리며 솟아나고 있었다.

     "여... 여보세요..."

     정신을 차린 미스터 박이 달려들어 여인의 몸을 흔들었으나 이미 숨
   이 끊어진 후였다.
     한평 남짓한 욕조 주변에는 여인이 밤새 피우다 만 담배꽁초들과 손
   톱 소재용 화장칼 하나가 널려 있었다.
     그리고 차가운 타일 위에 걸려 있던 욕실용 거울에는 그녀가 마지막
   으로 망설임 속에 썼을 법한  몇 자의 글씨가 빨간 매니큐어로 흔들리
   듯 쓰여져 있었다.

     -- 어머님! 아버님! 용서하세요. 불효자는 먼저 떠납니다...

     얼마 후 경찰이 달려오고 사건의 전모는 밝혀졌다.
     어제 밤에 같이  여관에 들어 왔던 남자와  여인은 사랑하는 사이였
   다. 그것도 죽고는  못 살 정도로. 그렇지만 사랑만으로는 어찌 할 수
   없는 벽이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았다. 즉 남자는 유명한 대기업의 외
   동아들이었고 여인은  평범한 가정의  대학생이었던 것이다. 아들에게
   회사를 물려주려는 부모는 마침 다른 기업의 외동딸과 자기 아들이 맺
   어지길 원하였고 자기 아들이 평범한 여인과 사귀고 있음을 눈치 채고
   는 그 대기업의 외동딸이 유학하고 있는 영국으로 유학을 보내게 되었
   던 것이다. 그 이별의 마지막 날,그 남자는 마지막으로 사랑했던 여인
   과 하룻밤을 보내고  아침 일찍 비행기에 올랐으리라. 부모의 뜻을 거
   역 할 수 없었기에. 그리고 사랑했던 남자가 다른 여인의 품으로 떠나
   버린 아침, 그 여인은 세상을 절망하며 동맥을 끊었으리라.
     참으로 소설 속에서나 가능한 가슴 아픈 이야기이다.
     하지만 소설 속의 창작된  이야기가 어차피 현실의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에 모티브를 두고 있기에 더 마음이 아프지 않을 수 없다.
     그 여인의 시신이야  화장이 되고 곧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갔겠지만 그 사랑의 마음이 어떠했기에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치닫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전해들은 순간부터  줄곧 필자는 가슴아픈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두에게 말해 주고 싶다.
     어차피 인생은 내가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부모도 친구도 그 누구
   도 내 삶을 대신 영위하진 못한다. 사랑으로 인하여 어느 누구든 상처
   받고 상처 주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할 것이다.

     세상에 사랑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을까?





     ☞다섯째 이야기: 남편을 찾아라

     서른 중반쯤 되어  보이는 중년 부인 하나가  다급한 표정으로 모텔
   불야성의 문을 밀치고 들어섰다.
     새벽 여섯 시, 뿌옇게 콘크리트 빌딩 숲을 헤치고 아침 여명이 밝아
   올 시각이었다.
     부인은 이목구비가 뚜렷한 꽤 미인형의 얼굴이었지만 무언가에 쫓기
   듯 계속 해서 안절부절못한 모습이었다.
     당직 근무 중이던 성일이 깜짝  놀라 졸린 눈을 비비며 부인에게 물
   었다.

     "어서 오세요 손님,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잠시 가쁜 숨을 몰아쉬던 부인은 물을 한 컵 청한 후에 떨리는 목소
   리로 입을 열었다.

     "여... 여기가 불야성이 틀림없죠?"

     "네, 맞습니다만..."

     "저.. 아저씨 부탁입니다. 제발 좀 도와주십시오?"

     난데없는 부인의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 성일은 다시 물었다.

     "손님,  진정하시고 말씀을 해 보세요.  도대체 무엇을 도와 달라는
   말씀이신 지요."

     "지금 혹시 손님 중에 강혜숙이란 여자가 있는지 확인 좀 해 주시겠
   어요. 아마 307호실 일거예요."

     "확인이야 어려울  거 없겠지만 그 전에  자초지종을 말씀해 주셔야
   죠. 저희가 무턱대고  손님들을 알려 드릴 순 없잖습니까? 저희에게도
   어느 정도 손님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잖아요."

     "흐흑... "

     잠시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던 부인이 잠시 후 자세한 이야기를 시
   작했다.
     부인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자기 남편이 직장을 핑계로 사흘이 멀
   다 하고 외박을  하며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운다는 것이었다. 그것을
   눈치 챈 부인이  이혼할 것을 요구하자 오히려  증거를 대라며 부인을
   구타하고 의처증으로 몰아  세웠다. 할 수 없이 증거를 찾으려 전화기
   에 도청 장치도 해 보고 사람을 시켜 남편의 뒤도 밟아 보았지만 워낙
   주도 면밀한 성격의 남편은 그때마다 교묘하게 추적을 빠져나갔다. 그
   러기를 석 달 째 되던 어제 오후, 드디어 남편의 꼬리가 잡혔다. 우연
   찮게 남편의 삐삐 비밀 번호를 알아내는 데 성공을 한 것이다.
     어제 오후, 남편은 지방 출장을 간다며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다
   고 했다. 그리고 오늘 새벽, 묘령의 여인이 남편의 삐삐메시지에 음성
   녹음을 남긴 것이다.

     "그래, 뭐라고 녹음이 되어 있었던가요?"

     궁금해진 성일이 재차  물었다.  그럴수록 부인의 모습이 참으로 측
   은해 보였다.

     "새벽 네시쯤 일겁니다. 이 여관 307호실에서 기다린다는 메시지 였
   어요. 그 강혜숙 이라는 여자, 이미 짐작은 했던 여자죠. 남편과 같은
   부서에 근무하는 여자거든요.  각본대로 라면 교활한 남편은 지방에서
   새벽에 서울로 올라와 곧장 이리로 달려올 겁니다."

     그러면서 부인은 멍 투성이인 몸의 상처들을 보여 주었다.

     "이게 다 그놈한테  의처증이라고 얻어맞은 상처들이에요. 꼭 좀 도
   와주세요. 이번에도 현장을  잡지 못하고 놓친 다면 저와 아이들은 끝
   장이랍니다."

     "숙박계를 보니  307호실에 강혜숙이란 여자가  틀림없이 묵고 있군
   요. 그런데 부인 혼자 힘으로 어떻게 하시겠어요?"

     "제 남편은 상상외로  교활한 인간입니다. 조금만 이상해도 자릴 떠
   버리기 때문에 몇 번이나 현장을 놓쳤지요. 남편은 한 번 갔던 여관에
   두 번 다시 가는 일이 없을 정도로 철두철미한 성격의 소유잡니다. 저
   는 사람들과 멀리서 기다릴 테니 남편이 들어가면 곧바로 제게 호출을
   해 주세요. 그러면 제가 사람들을 데리고 곧 달려올 겁니다."

     그러면서 부인은 자신의 호출 번호와 함께 남편의 사진을 내밀었다.

     "그렇게 하지요. 너무 걱정 마세요. 잘 될 겁니다."

     부인이 사라지자 성일은 잠시 딜레마에 빠져들었다.
     만에 하나 부인의 말이 거짓이라면... 더구나 종업원은 일단은 자신
   의 여관에 묵은 손님을 보호해야 할 일차적인 책임이 있지 않은가. 더
   구나 업주는 시끄러운 일이  생기고 경찰들이 들이닥치는 일은 절대로
   원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내 온  몸이 멍 투성이인 부인의 애절한 눈빛이 떠올랐다.
   적어도 부인의 눈은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두시간여 긴장된 시간이 흐르고 아침 아홉시가 조금 못 되어 드디어
   그 문제의 남편이 여관 문을 조심스레 밀치고 들어섰다.

     "손님! 누굴 찾아 오셨습니까?"

     식은땀이 흘렀으나 태연한 얼굴로 성일이 물었다.

     "307호 갑니다."

     남자가 짧고 굵은 바리톤 음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남자가 사라지자 종업원 성일은  서둘러서 부인의 호출 번호를 눌렀
   다. 000번, 그것은 남자가 나타났다는 부인과의 약속된 암호 였다.
     잠시 후, 오분이 채 못되어 사복 차림의 경찰관 두명을 데리고 부인
   이 나타났다.  작은 카메라를 손에 든 부인의 두 손은 자꾸만  떨리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누구보다도 사랑해서 지구상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단 한 사람의  인연으로 맺어진 인연이리라. 그러나 그 사랑이 자식까
   지 낳은 마당에 차가운 배신이라는 이름으로 돌아서고 있을 때에 부인
   의 심정은 어떠했으랴. 더군다나 다른 여자와 부둥켜안고 침대를 뒹굴
   고 있을 그 현장을 눈으로 확인해야 하는 이 마당에.
     분노에 와들와들 떨고 있는  부인을 대신하여 대동한 경찰관이 차분
   히 307호실의 문을 두드렸다.

     "실례합니다. 잠시 인검이 있겠습니다. 문 좀 열어 주세요!"

     잠시의 시간이 흐르고 안에서 앙칼진 여자의 음성이 들려 왔다.

     "누구세요?"

     하지만 대답 속에는 분명히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네, 인검 중인 경찰관입니다. 문 좀 열어 보세요."

     곧이어 문이 열리고  서른쯤 되어 보이는 여자  하나가 급히 겉옷만
   껴입은 채로 얼굴을 내밀었다.

     "저리 비켰! 이 더러운 년!"

     남편과 함께 있는  새파란 여자를 보자 분노가  치민 부인이 여자의
   몸을 밀치며 방안으로 뛰어 들었다. 곧 이어 경찰들도 뒤를 따랐다.

     "앗! 어떻게 된 일이지?"

     부인이 먼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어찌된 영문인지 방안은  텅 비어 있었던 것이다. 남자의 흔적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가 않았다.
     모두가 어리둥절해  할 무렵, 문 한  켠에 기대어 팔짱을 끼고 있던
   여자가 조소를 흘리며 말했다.

     "흥, 뭣들  하는 거죠? 경찰이면  답니까? 민주 경찰은 이렇게 남의
   방에 함부로 들어와도 되는 건가 보죠. 어서 썩 들 나가세요!"

     당황한 경찰관이 종업원들의 얼굴만 처다보았다.

     "어떻게 된 거야?"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금방 307호실로 올라 간 사내가 감쪽
   같이 사라지다니.
     그러나 물러설 경찰이 아니었다.

     "이봐요 아가씨! 시치미 뚝 때면 모를 줄 알고, 이거 왜 이래.다 알
   고 왔는데. 도대체 어디로 도망간 거야?"

     "마음대로 하세요. 만약 증거를 찾지 못하면 불법 침입 죄로 모두를
   고소하겠어요."

     너무나도 당당한 여자의 태도  였는지라 모두들 엉거주춤 방을 나왔
   다.

     "이봐! 잘못 짚은 것 아냐?"

     "아닙니다. 틀림없이  사진 속의 그 남자 였어요. 307호실로 간다고
   까지 말했는걸요."

     "젠장, 귀신이 곡할 노릇이군."

     바로 그때였다. 방에서 날카로운 여자의 비명 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무엇인가 둔탁한 것이 땅으로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 왔다.

     "앗! 창문입니다. 빨리 밖으로 나가세요."

     짚이는 데가 있는 듯 성일이 소리쳤다.
     아니나 다를까. 밖으로 달려나온 일행은 모두들 놀라며 얼굴을 가렸
   다. 창 밖  여관 건물 앞 화단  위에는 아까의 그 남자가 의식을 잃고
   거꾸로 처박혀 있었다.
     경찰과 부인이 간통의 현장을 덮친 순간, 당황한 그 남편은 창문 밖
   으로 몸을 숨겼고 베란다에 매달려 있다가 힘에 겨워 밑으로 추락했던
   것이다.
     다행이 떨어진 곳이 콘크리트가 아닌 화단이었던지라 남자는 다리가
   부러지고 두어 군데 찰과상을 입은 것으로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 이후, 두 부부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헛된 한 순간의 욕망이 초래한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사건이었다.
     그리고 이 기회를 빌려  유부남 유부녀와 바람을 피우는 사람들에게
   한 마디 충고를 해 주고 싶다.
     자기 남편이나 부인 몰래 다른  사람과 한 순간 피워 올리는 불장난
   은 자칫 스릴 있고 쾌감이  따를 지언정 입장을 바꾸어서 자기의 부인
   이나 남편이 바람을 피운다면 그 심정이 어떻겠는가를...

     결코 아무렇지도 않게 무덤덤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여섯째 이야기: 잠복 근무♥

     연일 계속되는 도둑과의 싸움으로 인하여 모텔 불야성의 종업원들은
   지칠 대로 지쳐 가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철통같이 순찰을
   돌고 객실 점검을 해도 얼굴을  모르는 도둑은 요 며칠 사이 계속해서
   쥐도 새도 모르게 손님들의 방을 털어 가곤 했던 것이다.
     손님들이 술에 취하여 객실 문을  열어 놓고 자다가 가끔 도둑을 맞
   는 일이 있긴 했었지만 일년에 한 두 번 어쩌다가 있는 일이었지 요즘
   처럼 자주 발생하지는 않았었다.
     최근 한달 여를  기점으로 하여 근 일주일에  한두 번씩은 어김없이
   손님들의 방이 털리곤 하자 사장은 드디어 비상 사태를 선포했다.
     손님들에게 일일이  귀중품은 프런트에 맡기게끔  하였고 문을 걸고
   잠을 자도록  유도하였다. 그리고 밤에는  전 종업원이 교대로 순찰을
   돌고 몽둥이를 들고 지키게 했지만 모든 것이 헛수고 였다.
     범인은 귀신처럼 문을 따고  손님들의 지갑을 훔쳤고 급기야 조사하
   던 형사들은 이를 내부의 소행으로 단정 애매한 종업원들만 조사를 벌
   이며 의심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종업원들은 오해를 풀고 범인도 잡기 위해 사장에게  CC-TV
   와 카메라를 설치하자고 건의를 하였지만 구두쇠 사장은 돈 드는 것이
   싫어 그것을 묵살하고 형사들과 한 편이 되어 오히려 종업원들을 물갈
   이할 기회만을 엿보고 있었다.
     겉으로는 한없이 평화스러워 보였지만 그렇게 차가운 전운이 감돌고
   있는 모텔 불야성에 지방에서 서울로  범인 검거 차 출장 왔던 박형사
   가 들어선 것은 자정이 조금 못된 시간이었다.

     "방 하나 있습니까? 피곤해서 잠 좀 자야겠습니다."

     유도로 딱 벌어진 어깨에 서른을  갓 넘긴 박형사는 몹시 지쳐 있었
   다.  그도 그럴 것이 범인을 잡기 위해 며칠째 잠복 근무를 하다가 허
   탕을 치고 내일 첫차로 일찌감치 본부로 내려오라는 명령을 받고 얼마
   안 되는 수사비를 쪼개어 여관을 찾은 터였다.  범인의 집 앞 벽돌 담
   아래서 삼일 밤낮을 쪼그리고 보낸 터라 뜨거운 목욕과 따스한 잠자리
   가 간절했다.

     "저... 혼자 주무실 겁니까?"

     박형사를 위 아래로  예리하게 흩어 보던 종업원  성일의 눈이 순간
   반짝 빛났다.  안 그래도 도둑 때문에  긴장되던 터에 남자 혼자 오는
   손님은 무조건 경계 대상이었던 것이다.

     -- 이놈들아! 여자 남자가 여관에 연애하러 와서 할일 없이 남의 방
   을 털겠어. 이건 필시 남자 혼자 오는 놈의 소행 일거야. 오해받기 싫
   으면 잡아! 못 잡으면 너희들 소행으로 알겠어.

     얼마 전까지 악다귀를 늘어놓다가 퇴근을 한 사장의 말도 일리가 있
   는 얘기였다. 도둑은 필시 남자일 것이다. 그리고 도둑이 외부에서 침
   임 하리란  법만은 없었다. 손님으로 가장해서 방을 잡고  기다렸다가
   모두가 잠든 새벽녘에 살며시 일어나 다른 방들을 따고 지갑을 훔친다
   면 얼마든지 가능한 시나리오였다.

     "왜, 남자  혼자 자면 안되는  법이라도 있습니까? 피곤해 죽겠으니
   어서 방이나 하나 줘 봅시다."

     종업원의 말이  기분이 나쁘긴 했지만  박형사는 참기로 했다. 어서
   따근따근한 물로 샤워를 하고 자리에 눕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런 뜻은 아니구요.  혹시 여자 손님 오시면 안내를 해 드려야 하
   니까, 해해... 해서 물어 본 겁니다."

     이상한 예감을 억누르며 성일은 미스터 조를 불렀다.

     "미스터 조? 손님 오셨으니 방 좀 하나 안내해 드리세요."

     "예, 이쪽으로 오시죠. 침대로 드릴까요? 온돌로 드릴까요?"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 버튼을 누르며 진수가 물었다.

     "혼자 잘건대 침대는 뭐합니까. 따듯한 온돌로 하나 주세요. 일자릴
   구하느라 온종일 돌아 다녔더니 피곤하군요."

     박형사는 짐짓 거짓말을 했다. 정말로 그의 얼굴은 피곤으로 가득해
   보였다.

     "어디, 이상한 낌새는 없던가. 미스터 조?"

     진수가 안내를 하고 내려오자 프런트를 보던 성일이 성급히 물었다.

     "별다르게 이상한 점은  없던데요. 그 나이에 캐주얼복 운동화 차림
   이 좀 이상하긴 하지만 그러고  보니 자꾸 피곤하다고 하는 것이 이상
   하긴 하기도 하고... ..."

     "틀림없어. 뭔가  있다구. 이래봐도 내가 프런트 경력 10년째야. 척
   보면 손님들의 마음쯤은  읽을 수가 있지. 지금까지 예감이 빗나간 적
   은 없었어. 아무튼 졸지 말고 신경 써서 보자구.이번에 한 번 더 도둑
   을 맞았다 간 우리 목이 성치 않을 거야."

     "제길... 무비카메라 한 대 달면  해결될 문제인데 직원들끼리 서로
   의심이나 하고 이 기회에 직업을 바꾸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봐! 그건 둘째 문제야. 어쨌든 도둑놈을 빨리 잡아야지. 참 그방
   말야. 남자 혼자 올라간 방. 문에 표시를 해 두지 그래. 문을 열고 다
   른 방을 돌아다니다가  자기 방으로 들어가면 표가 나게끔. 문틈에 성
   냥 꼴 한 개를 끼워 놓으라구. 문을 열면 밑으로 떨어질 테니 표가 나
   겠지."

     "참, 그거 좋은 아이디어 군요."

     성일은 오늘은 왠지 그 동안 속을 썩이던 도둑이 잡힐 것 같은 생각
   이 들었다. 잃어버린 돈을 변상해 주고 경찰서를 들락거리던 그동안의
   일들이 생각나 그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하나 둘씩 손님들의 발길이 뜸해지고 드디어 운명의 밤이 깊었다.
     새벽 다섯 시,  마지막으로 객실 점검을 하고 진수가 프런트로 돌아
   왔을 때 성일은 피곤했던지 전화  교환대에 코를 박고 잠에 빠져 있었
   다.
     쯧쯧. 저러니 도둑이 와도 털릴 수밖에 없지.들고 있던 야구 방망이
   를 곁에 내려놓고 혀를 끌끌  차던 진수도 이내 쏟아지는 졸음을 참지
   못하고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어 졸기 시작했다.
     객실 문도 모두 굳게 닫아져  있었고 여관 후문 쪽에 있는 비상구도
   아예 닫아걸어 버렸다. 화재나 비상시를 대비하여 열어 놓아야  할 비
   상구 였지만 밤에 잠 안자고  소방서에서 소방 검열을 나올 리는 없었
   기 때문이다.
     같은 시각, 모텔 맨 위층에 위치한 7층 709호실의 문이 열리고 복면
   을 한 두  그림자가 소리 없이 복도로 걸어나오고 있었다. 그들은 709
   호실에 일찌감치 손님으로 가장하여 방을 잡았던 인물들이었다.
     한 명이 손짓을 하자 다른 한 명이 재빠르게 계단을 이용하여 1층에
   있는 프런트로 달려 내려갔다.

     "그래, 어때? 깨어 있나?"

     "아무 생각 없이 자고 있어요. 탁자를 두드려도 모르더군요."

     "자식들! 그러면서 무슨 도둑을 잡겠다고..."

     어둠 속의 두  그림자는 킬킬거리면서 행동 개시를 했다. 그들의 손
   에는 날카롭고 조잡한 모양의 만능키가 들려져 있었다.
     두 그림자는 살며시 그러나  능숙한 폼으로 7층부터 객실의 이중 안
   전 고리가 걸리지 않은 방을 중심으로 방을 열고 잠에 떨어져 있는 손
   님들의 지갑만을 털면서 밑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딸각-
     한편, 자정  무렵부터 잠에 취하여  정신없이 잠에 빠졌던 박형사는
   새벽이 되어 화장실에  갔다가 다시 방으로 돌아와  마악 잠을 청하는
   순간 밖에서 들려 오는 이상한 소리에 본능적인 감각으로 정신을 차리
   고 숨을 죽였다.
     딸각- 잠시 후 두어번의 문 비트는 소리와 함께 살며시 문이 열리며
   검은 물체  하나가 소리 없이 방  안으로 스며들어 왔다. 전혀 소리가
   없이 그  모습은 마치 그림자처럼  다가왔다. 박형사는 순간 도둑임을
   확신했다.
     다른 사람들 같으면 놀라서  비명을 지르고 난리를 쳤겠지만 박형사
   는 동물적인 감각과 오랜 수사 경험에서 얻은 베테랑다운 솜씨로 오히
   려 코를 골아 가며  자는 시늉을 했다. 물론 작게 실눈을 뜨고 도둑의
   행동을 살피고 있었지만 어두워서 도둑은 방안의 사람이 자고 있는 줄
   로만 알았을 것이다.
     증거를 포착해야 했다. 기다린 보람이 있었던지 잠시 방안의 동태를
   살피던 도둑이 살며시 박형사의  청바지 주머니를 열고 지갑을 꺼내었
   다.

     "꼼짝 마!"

     다음 순간, 범인을  제압하기 위한 날카로운 외침 소리와 함께 박형
   사의 곰 같은 육중한 몸이 도둑의 몸을 덮쳤다. 놀란 도둑의 비명소리
   와함께 어둠 속에서 격투가 이어졌다.
     잠시의 시간이 흐르고 박형사가  어둠 속에서 날렵하게 수갑을 꺼내
   도둑의 손에 채우고 불을 켰을  때 박형사의 팔에서도 붉은 피가 흐르
   고 있었다. 도둑이 휘두른 나이프에 스친 듯했다.
     앗-. 도둑의 두건을 벗긴 박형사는 다시 한 번 놀랐다.
     도둑은 뜻밖에도 갓 이십대 초반의 아리따운 아가씨 였던 것이다.
     손님으로 왔던 박형사가 어여쁜  아가씨의 손에 수갑을 채우고 프런
   트로 내려오자 성일과 진수는 어안이 벙벙했다.

     "앗! 어떻게 된 일입니까? 그분은 우리 집 단골 손님 인대요."

     "어떻게 되긴? 빨리  경찰을 불러요. 도둑이 다행이 내 방으로 들어
   왔기 망정이지. 큰일 날 뻔했지 뭡니까."

     자기의 애인이 잡히자  그와 같이 있던 그녀의  남자 친구도 순순히
   자수를 했고 얼마 후 사건의 전모는 밝혀 질 수 있었다.
     즉 그들은 애인 사이로 공고를  졸업한 남자 친구가 열쇠 따기에 남
   다른 제주가 있던 점을 이용하여 애인 사이로 가장 여관에 든 후 만능
   키로 닫혀진 객실 문을 열고 돈을 털어 왔던 것이다.

     "정말 고맙습니다."

     연락을 받고 황급히 달려온  사장이 박형사를 보고 고개를 구십도로
   숙여 인사를 건넸다.

     "고맙긴요. 제 일인 걸요. 그나저나 쉬는 시간까지 잠복근무의 연장
   이니 웃어야 겠지요. 편히 발 뻗고 쉴 날이 없구려."

     새벽 기차를 타기 위해 박형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후, 모텔  불야성에서는 더 이상  도난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일곱째 이야기: 어느 제비족의 말로

     "방 있습니까?"

     날씨가 제법 쌀쌀해진 어느 토요일이었다.
     아직은 손님이 뜸한  초저녁, 사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두 남녀가 여
   관 불야성의 문을 밀치며 들어섰다.

     "예, 그럼요. 이쪽으로 오십시오 손님?"

     종업원 진수의 안내를 받아 객실로 향하는 사내는 훤칠한 키에 검정
   색 양복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미남형의 얼굴을 하고  있었고 그 옆에
   팔짱을 낀 여자는 저녁인데도  검정색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리고 작은
   키에 뚱뚱한 몸집을 흔들며 걷고 있었다.
     술이 기분 좋게 취한 남녀는  객실 앞에 이르러 주위의 시선은 아랑
   곳하지 않고 복도에 기대어 부둥켜안고 입맞춤을 했다.

     "요금이 얼마죠?"

     진수가 방 안내를 마치자 여인을 부축하던 남자가 눈짓을 해 보이며
   물었다.
     가만히 보니 술에 취한 것은 여자만 인 듯 했다.

     "숙박료가 삼만 오천 원 입니다."

     사내는 주머니에서 빳빳한  만원 짜리 네 장을  꺼내어 진수 앞으로
   내밀었다.

     "잔돈은 됐습니다. 문이나 꼭 잠가 주세요?"

     "예, 걱정 마시고 편히 주무세요."

     오천 원의 팁을 확인한 진수는  이게 왠 떡이냐 싶어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자정이 되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여자를 놓아두고 밖으로
   나갔던 그 사내가  한 시간쯤 지나서 역시 또  다른 중년 부인 하나를
   데리고 문을 밀치며 나타난 것이다.

     "아저씨, 방 하나 주세요?"

     "... ... ..."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 진수는 잠시 망설였다. 생김새로 보아서는 틀
   림없는 아까의 그 남자 였지만  다른 여자를 데리고 이곳에 올리는 없
   었기 때문이다. 혹시 쌍둥이 일지도 모른다.

     "예? 예..... 예..."

     잠시 어리둥절해 하던 진수가 정신을 차리고 엘리베이터의 칠 층 버
   튼을 눌렀다. 칠 층의 빈방으로 손님을 안내하기 위해서 였다.
     그때였다. 여인  몰래 눈을 찡긋 해  보인 사내가 손가락 다섯 개를
   펼쳐 보였다. 순간, 진수는 그가 오층으로 방을 원하고 있음을 눈치채
   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라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진수는 아까 그
   남자가 얻었던 객실 바로 옆 호실에 또다시 그 손님을 안내했다.
     객실을 확인한 사내는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이번에도 사만 원의 돈
   을 말없이 내밀었다.
     별 이상한 사람도 다 있군. 두 여자씩이나 데리고 들어와서 뭘 어쩌
   겠다는 거지. 프런트  데스크로 내려온 진수는 의아해 하며 오층 복도
   를 비치고 있는 보안용 CC카메라에 눈을 고정시켰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흐르자 남자는 다시 방을  빠져 나와 처음의
   여자가 있는  방으로 옮겨갔다. 정말로 그  남자는 두 방을 오가며 두
   여인과 정사를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쳇! 자식,재주도 좋아. 누군 나이 서른이 넘도록 여자가 없어 장가
   도 못 가고 이 모양  이 꼴인데 누군 하룻저녁에 두 여자를 품고 자다
   니.... 에잇 더러워라..."

     프런트를 보던 나이 서른의 노총각  성일은 열이 받은 양 담배를 꺼
   내 피워 대며 투덜거렸다.

     "걱정하지마, 형! 내일  저 남자 일어나면 사부님으로 모시고 한 번
   비결을 물어 보면 될 것 아냐? 걱정은 무슨..."

     안내를 맡은 진수가 웃으며 말했다.

     "정말, 그래야 할 것 같군. 무슨 용빼는 재주라도 있는지..."

     그러나 이상한 일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새벽 네시 쯤하여 종업원들이 졸린  눈을 비비며 겨우 잠을 쫓고 있
   을 무렵 그 사내는 태연히  밖으로 나가더니 아침이 다 되어 이번에는
   서른쯤 되어 보이는 여자 하나를  데리고 다시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
   이 아닌가?
     어어.. 종업원들이 놀라 눈을 꿈벅거리며 바라보자 사내는 태연하게
   말했다.

     "방 하나 주세요?"

     "예, 이쪽으로 오십시오"

     대답을 마친 진수는 이번에는 말 안해도 알겠다는 듯 사내를 데리고
   오층으로 향하였다.

     "응... 자기야, 춥다... 얼른 들어가자....."

     사내에게 착 달라붙은 여인은  연신 끈적끈적한 신음을 내뱉으며 독
   한 술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아까의 방 옆으로 객실을 마련해 주자 그는 이번에도 만족스런 얼굴
   을 하고 사만 원을 진수에게 건넸다.
     별 이상한 사람도  다 있다는 생각을 하며  진수는 프런트로 내려와
   의자에 몸을 뉘였다.
     그렇게 얼마 후, 세 번째 여인의 방에서 한시간을 보낸 남자는 다시
   두 번째 여인의 방으로 그리고 첫 번째 여인의 방으로 각각 한시간 정
   도씩을 머물고는 아침 아홉 시가  되어서 세 번째 여인의 방으로 들어
   간 후 프런트로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무슨 말이 나올까 궁금해하며 전화를 받은 것은 성일 이었다.

     "다른 방에서 말이오. 나 찾는 전화를 하면 일이 있어 아침 일찍 나
   갔다고 좀 전해 주시오. 다음에 연락한다고 하드라고 말이오.부탁합니
   다."

     "예, 걱정하지 마시고 푹 주무세요."

     남자는 몹시 피곤해 지친 음성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유야 어찌
   되었건 간에 하룻밤에 세 여인이나 탐을 했으니 코피를 흘리며 쓰러지
   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스러운 일이었다.
     그 토요일, 그렇게 첫 테이프를 끊은 남자는 이후에도 종종 모텔 불
   야성에 모습을 나타내었다.  이상했던 일은 한 번 온 여자와는 절대로
   두번 다시  여관에 오는 일이  없다는 점이었다.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그 남자는 그 방면으로 상당한  고수의 실력을 가지고 일을 벌이고 있
   음이 틀림없었다.
     그렇게 하기를  육개월 여, 어언 단골  손님이 되어 버린 그가 어느
   날부터인가 갑자기 종적을 감추었다.
     때를 같이하여 하루에 한두 명씩  잘 차려 입은 부인들이 들어와 그
   남자의 종적을 묻는  일도 잦아졌다. 전에도 간혹 그런 일들이 있었으
   나 사내에게서 적지 않은 팁을  챙긴 종업원들이 모른다고 잡아 땐 것
   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남자가 사라지고 부터 유독 그
   런 발길들이 잦아졌다. 심지어는 형사들까지 나와서 탐문 수사를 벌여
   가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종업원들  사이에서 아쉬움과 궁금증으로  그 남자가 잊혀져
   가던 어느 날, 누군가가 사 들고 들어온 연애 잡지의 한 켠에 그 남자
   의 기사가 실려 있었다. 그리고 그 현대판 변강쇠 같은 남자의 베일이
   낱낱이 벗겨졌다.
     세간에 알려진 남자의  이름은 박 아무개. 그는 출소한지 일년이 체
   못 된 전과 10범의 전문 사기꾼이었다.
     형을 받고 이년만에 만기 출소한  그는 또다시 손을 씻지 못하고 이
   번에는 잠실과  천호동 주변의 카바레를 돌며  교포2세 사업가를 자칭
   수려한 용모와 세련된 말솜씨로 부녀자들을 홀리고 돈과 몸을 갈취 해
   왔던 것이다.

     최근에 우리 나라는 계속되는  남아 선호 사상으로 인하여 하룻밤에
   한 남자가 한 여자 데리고 자기도 힘들어진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와는 정 반대로 그는 하룻밤에도 건수가 생기면 두명 세명
   의 여자도 마다  않고 기쁨조를 운용하는 북한의  김일성 부자나 삼천
   궁녀를 두었던 백제 의자왕 부럽지  않은 생활을 했으니 가히 기가 찰
   노릇이다. 기실 그의  목적은 여자들의 몸이 아닌 그녀들이 지녔던 돈
   이나 값나가는 물건이었겠지만 말이다.
     번듯한 말투에 놀아난 여자들이 가진  것을 모두 빼 주고 덤으로 넘
   겨주는 몸조차 마다하지 않았으니 참으로 욕심도 많았던 것 같다.
     더군다나 그가 꼬리를 잡힌  것은 여인들의 돈이나 금품을 갈취해서
   가 아니라 그를 한 번  만났던 여자들이 다시 만나 주지 않는 데에 앙
   심을 품고 신고를 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하니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명단이  밝혀진 여인들은 대부분 혐의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고 한다.
     하여간에 이러한 제비족 유형의  범죄들이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
   는 데에는 분별없는  여인들의 행실에서도 그 원인을  찾아야 할 것이
   다. 상대가 돈 있고  번듯해 보이면 앞 뒤 가리지도 않고 줄 것 안 줄
   것 다 주어 버리고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라면 가정과 자식들까지도 내
   팽개치는 것이 현실이니 안타까울 뿐이다. 모든 것이 더럽혀지고 도덕
   이 무너진  다음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몸의 때는 물로 씻을
   수 있을지언정 양심의 더러운 때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지금, 그 화려했던  시절을 뒤로하고 차가운 감방 안에 누워 제비족
   사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결코 그 시절이 화려했다고 생각진 않을 것이다.

     지금, 당신은? 혹은 당신의 주변은 모두 안녕 하신 지....




     ☞여덟째 이야기: 일본에서 생긴일1

     K씨에게 있어서 이번은 세  번째의 일본행이었다. 부산에 본부를 둔
   무역 회사 입사  후 줄곧 국내부의 영업 관리  일만 맡아 오다가 해외
   판촉부의  직원 하나가 사표를  내면서 그리로 자리를 옮긴 것이 벌써
   몇 달  전이었다. 새로 옮긴 부서는  부서의 특성상 유독 해외 출장이
   많았지만 K씨는 그 일이 여간 즐겁고 만족스러운 것이었다.
     부서의 직원 다섯명이 함께 동경의  모 회사와 제품 수출 계약을 맺
   기 위해 부산에서 비행기로 날아왔던 이번 출장도  K씨의 주도적 활동
   으로 유리한 조건으로  계약이 성사되었다. 그래서인지 짠돌이로 소문
   난 부장이 모처럼 술을  사는 바람에 3차까지 동경의 뒷골목을 누비던
   일행은 자정이 되어서야  숙소인 호텔로 돌아올 수 있었다. 상품 홍보
   도우미 역할 차  따라온 여직원 셋이 일찌감치  방으로 올라간 뒤에도
   K씨는 부장과 함께 호텔  빠에서 두 시까지 술잔을 기울인 뒤에  라야
   자신의 객실로 올라왔다. 워낙에 술꾼이기도 한 그였지만 오늘의 계약
   이 생각할수록 흡족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때부터 발생하기  시작했다. 4차까지 술을 퍼지게
   마셨으니 어지간히 취할 법도  한데 K씨의 뇌리 속엔 갑자기 딴  생각
   이 떠올라 좀처럼 잠을 이루질 못했다. 첫째는 술을 먹은 것이 화근이
   었고 둘째는 술만 먹으면 이상하리 만치 여자  생각이 간절해지는 K씨
   의 여성 편력이 화근이었다.
     잠을 청하려 별의별 노력을 다  기울이던 그는 마침내 결심을 한 듯
   전화기를 들고 벨 데스크로 전화를 걸어 벨맨을 오게 했다.

     "이거... 혼자  자려니까 영 잠이 오지 않아서 말이야. 얼마면 되겠
   나?"

     일본의 일부  호텔에선 늘씬한 콜걸들이  있더라는 얘기는 언제인가
   잡지의 한 켠에서 읽은 터였다. K씨는 태연하게 능숙한 일본어로 물었
   으나 술기운으로 인해 이미 혀는 꼬부라지고 있었다.

     "아, 그러시겠어요. 감사합니다."

     스물 두어 살쯤 되었을까. 검정 나비 넥타이를  산뜻하게 걸친 보이
   는 먼저 허리를 굽혀 감사의 표시부터 했다. 그리고는 의미 있는 웃음
   을 입가에 흘리며 K씨를 쳐다보았다.

     "그러면 그 전에 손님께서 돈을  내고 하실 건지 돈을 받고 하실 건
   지 결정을 해 주셔야지요?"

     보이의 말에 의아해진 K씨가 물었다.

     "아니 이봐! 내가 여자를 부르는데 돈을 지불해야 하거늘 오히려 돈
   을 받고 할 수도 있단 말인가?"

     "그럼요. 손님은 단지 선택만 해 주시면 됩니다."

     "아가씨가 틀린가. 아니면 서비스가...."

     "아니요. 다 똑같습니다. 전혀 다를 것이 없읍죠."

     술기운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자신이 너무 촌스럽게 보이지나 않을
   까 걱정해서 였을까. K씨가 거기서 더 이상 묻지 않은 것이 결정적 화
   근이었다.

     "뭐가 그리  복잡해. 아무렇게나 불러 주면 되지. 이왕이면 내 돈을
   받고 하겠네."

     "아이고 이런... 고맙습니다 사장님."

     K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보이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보이는 어찌
   된 영문인지 진심으로 그에게 고마워하고 있었다.
     잠시 후 다시 돌아온 보이는 서비스라며 맥주 두 병을 탁자 위에 올
   려놓고 지갑을 열어 이  만엔 이라는 적지 않은 돈을 K씨에게  내밀었
   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참으로 이상한 제도도 다 있구나 생각을 하면
   서 그는 그  중의 반을 도리어 보이에게 팁으로  찔러 주고 침대 위로
   벌렁 나자빠졌다. 술이 오르는지 천장에 매달린 형광등이 두 개 세 개
   로 왔다 갔다 했지만 분명 꿈은 아니었다. 손님에게 여자를 소개해 주
   고 오히려 돈까지 주다니... 참으로 아리송한 일이었지만 그는 복잡하
   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오늘 회사를 대표한 수출 계약도 무사히 마
   쳤고 어쩐지 자신에게는 행운이 따라 다니는 느낌이었다.
     이런 저런 생각으로 K씨가  두 대 째의 담배를 태웠을 무렵  정말로
   잡지책에서만 보았을 법한 절세의  아가씨 하나가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채 스무 살도 넘지 않았을 법한 애띤 얼굴에 조각처럼 빚어
   진 몸매. 허리까지 길게 넘실거리는 생머리의 향취에 K씨는 금방 숨이
   막힐 듯했다.
     제길. 내가 무슨 꿈을 꾸고 있는 게로구나.. 꿈이라면 제발 깨지 말
   아 다오. 현실이라면 아... 이대로 죽어도 좋다....
     K씨는 다리를 꼬집어보았지만  어디까지나 틀림없는 현실이었다. 순
   간 씽긋 웃어 보이던 그녀가 침대로 다가와  K씨의 머리맡에 걸터앉았
   다.

     "자... 그러면 우리 화끈하게 한 번 시작해 볼까요?"

     "아.... ...."

     K씨는 숨이 막혀서 대답을 못하고 더듬거렸다.
     그러면서 그녀는 입고 있던 빨간 블라우스의 단추를 하나씩 풀기 시
   작했다. 곧이어 터질 듯한 안의 내용물이 어렴풋이 K씨의 눈앞에서 아
   른거렸다. 흥분이 극에 달한 K씨가  더는 못 참겠다는 듯 스탠드의 조
   명을 붉은 색으로 바꾸고   그녀의 몸 위로 몸을 날렸다. 그때 갑자기
   밑에 깔렸던 그녀가 나즉이 속삭였다.

     "저.. 우리 화끈하게 불을 켜 놓고 하면 안될까요.전 어두우면 무서
   워서 흥분이 잘 안되거든요."

     "그래, 그거 좋지...."

     K씨가 환영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다시 일어나  방안의
   조명을 환하게 밝히고는 다시금 침대로 파고들었다.

     ***

     자. 그 다음에 그날 그 방에서 어떠한 일이 벌어졌는지는 독자 여러
   분들 각자의  상상과 소중한 경험(?)에 맡기겠다. 혹은 더러는 일단의
   잠 못 이루는 어린이들이 글을  읽고 행여나 못된 짓을 저지를지도 모
   르기 때문이다. 어쩌면 글쓴이의 그 방면의 무지(?)^^; 때문이라고 그
   렇게 치부해 버리기로 하자.
     글의 전개상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그 밤, K씨는 정말 세상
   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맛보는 황홀한 경험을 했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언젠가 보았던 일본식 포르노의 그 행위들과 거의 다를 바
   가 없을  정도로 그 묘령의 여인은  정렬 적이었다. 대강 그렇다고 해
   두고 그 밤의 이야기는 접어 두기로 하자.

     그 후, 그들은  모두 무사히 한국으로 돌아왔고 모두 직장에 복귀하
   여 예전처럼 바쁜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그러던 K씨가  동료들의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것은 그로부터  약
   삼 사일 후의  일이었다. 주로 여직원들에게서부터 이상한 수군거림이
   시작되더니 순식간에  온 회사 안으로  번져 가는 느낌이었다. 그들은
   무슨 말인가를 하다가도  K씨만 나타나면 일제히 말을 멈추었다가  그
   가 사라진다  싶으면 기다렸다는 듯  웃음을 터트리곤 했다. 그렇다고
   내놓고 이유를 물어 볼 것도  못 돼 고개를 기우뚱거리던 그에게 며칠
   전 일본 출장을 같이 갔던 부장이 퇴근 무렵 그를 지하 커피숍으로 불
   러내었다.

     "아니, 이봐! 자네 어쩌자고 그런 실수를 했어?"

     "실수.... 라니요?"

     직감적으로 일이 잘못  되었음을 느낀 K씨는 부장의 얼굴만  근심스
   럽게 쳐다보았다.

     "아니... 이 사람. 그럼 여태 모르고 있었단 말인가?"

     "... ..."

     "그날 자네 혹시 호텔에서 아가씨를 부르지 않았나?"

     "예... 그.. 그게 뭐가 잘못 되기라도 했단 말입니까?"

     "예이... 이 사람아...잘못돼도 크게 잘못 되었지.혹시 보이에게 돈
   을 받지는 않았나?"

     "예... 조금..."

     "이런.. 그게 무슨 돈인지도 모르고..."

     "아-니-그-럼"

     "그래, 그건 일종의 출연비야. 포르노 출연비. 그 호텔 방에는 특수
   카메라가 설치돼 있어서 손님이 아가씨를  부를 때 돈을 내면 그냥 아
   가씨를 불러 주지만 돈을 받겠다고  하면 여자를 들여보낸 후 그 정사
   장면을 즉석에서  찍어서 전 호텔 방으로 생 중계를 해 주는  곳이지.
   나야 피곤해서 그냥 잠을 자느라 몰랐지만 여직원들이 우연히 그걸 보
   고 말았나 보네.  아침까지 녹화를 해서 틀어 주었다고 하더군.  젠장
   그러기에 몸조심했어야지."




     ☞아홉째  이야기: 택시 기사 L씨의 이중생활

     구름 낀 하늘. 그러나 눈은 오지 않고 있었다.
     점심 시간이 조금  지난 시간이다. 기사 식당에서 설렁탕 한 그릇을
   간단히 비우고 나와 자신의  영업용 승용차에 앉아서 담배를 뻐끔거리
   던 L씨는  갑자기 눈을 가늘게 뜨고  저만치 신호등 앞을 바라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사거리 신호등을  조금 못 미친 곳에는 아까부터 언뜻
   보기에도 귀티가 줄줄 흘러 보이는 귀부인 차림의 여자 하나가 택시를
   세우려는지 연신 손을 흔들어 대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녀는
   택시가 앞에 와서 서기만 하면 택시 기사의 얼굴을 한 번 힐끗 훔쳐보
   고는 그냥  보내기를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었다. 그렇게 이십여  대의
   택시가 무료하게 그녀를 스쳐 지나쳤다.
     젠장, 공동묘지에라도 갈  참인가? 꽁초까지 다 타 들어가는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며 L씨는 속는  셈치고 그녀 앞으로  슬그머니 차를
   몰았다. 아까부터  줄곧 그녀를 지켜  본지라 잔뜩 호기심이 동하기도
   한 터였다.  아니나다를까, 택시가 그녀 앞으로 다가서자 그는 또다시
   손을 흔들어 차를 세우는 시늉을 했다.
     넉넉잡아 여인의 얼굴은 마흔 살쯤 되었을까. 갈색으로 연하게 물들
   인 머리칼은 두어 번 주리를  틀어서 핀으로 정갈하게 올려 묶었고 긴
   검정색 주름치마 위에 걸친 잿빛 밍크코트는 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산
   들거렸다.

     "손님. 어디로 모실까요?"

     사뿐히 나비처럼 부인  앞에 차를 멈춘  L씨는  투박한 전라도 사투
   리를 싹 감추고 정중하게 물었다. 며칠 전 동료 기사에게서 들은 말이
   있었던지라 L씨의 입가엔 잔잔한 희심의 미소까지 떠올랐다.
     그냥 돌아갈 참이었다는  듯 짜증스런 표정을 짓고  서 있던 그녀의
   눈길이 서서히 L씨의 희색 소나타 택시 안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그녀
   의 얼굴에 잠시  무엇인가 망설이는 듯한 묘한  갈등의 표정이 스치고
   있었다.

     "워커힐 호텔 쪽으로 갑시다."

     결정을 내렸다는 듯  쓰고 있던 검정 선글라스를  척 접어든 여인이
   택시 앞좌석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썩 만족스런 표정의 아니었으나
   날씨가 차츰 쌀쌀해질 판이었는지라 더 이상 길거리에서 서 있을 수도
   없는 노릇 인 듯 했다.
     나이답지 않은 하얀  피부에 곱상해 보이는 얼굴, 오똑한 콧날 밑에
   까만 점 하나.자주 빛 립스틱으로 둘러싸인 도톰한 입술. 찬찬히 그녀
   를 ㅎ어보던 L씨는 태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수교차로를 지나 동작
   대교를 건넌 후  차를 강변대로 쪽으로 우회전했다. 강변 대로를 타고
   시원하게 워커힐 방향으로 갈 심산이었다. 그때까지 그녀는 아무런 말
   이 없었다.  뭔가를 잘못 짚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L씨는 끈기 있게
   기다렸다. 아직은 작전의 시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남 대교 부근을 지날 즈음  차가 심하게 정체되어 시간이 많이 지
   체되었으나 부인은 애초에 시간 따위는 안중에 없는 듯 했다. 그냥 무
   료하게 창 밖을 힐끔거리며  무엇인가 골똘하게 생각에 잠긴 표정이었
   다. 젠장,건수 하나 기대하다가 차만 밀리고 합승도 못하고 오늘 하루
   도 또 죽치는 신세군. 갑자기 부화가 치민 L씨는 담배를 꺼내 들었다.
   때마침 잔뜩 찌푸린 마른 하늘  위에서 솜털 같은 눈들이 날리기 시작
   했다.

     "아저씨, 나도 담배 하나 주시구려..."

     벙어리 인줄만 알았던 그녀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눈을  보기 위해
   서인지 잠시 벗었던 선글라스를 다시 눈가로 가져가고 있었다.

     "담배요. 아 얼마든지 피세요."

     그러면 그렇지. 일단 말이 붙었으니 이제 술술 풀리기는  시간 문제
   겠지.
     L씨는 담배 하나를  꺼내어 건네주며 라이터로 불까지  깍듯하게 붙
   여 주었다.

     "무슨 괴로운 일이라도 있으신지요?"

     "아저씬! 괴로우면 다 담배 피웁니까?"

     "앗, 이거 아저씨라고 하지 마세요. 이래봬도 서른 두 살,한창 팔팔
   한 총각이랍니다."

     결혼 2년째인 L씨는 짐짓 거짓말을 했다. 아무렴 아저씨보다야 총각
   이 났지  않을까 해서였다. 요즘 돈  많은 유한 마담들이 어디 아저씨
   찾는 것 보았는가.
     담배를 빨던 그녀가 갑자기 깔깔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아니, 이봐요? 댁이 총각인지 아저씬지 내가 어떻게 알아요.보기를
   했어요? 아니면 무엇으로 증명을 한답니까? 요즘은 고등학생만 되어도
   총각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랍니다. 하물며 서른 두 살씩이나 먹어
   놓고는..."

     "아, 손님도... 그렇게 따지면야 할 말이 없읍죠."

     이야기가 어찌 음담패설로  심상찮게 흐른다. 오늘 잘 하면 봉을 건
   지겠구나. 솟아오르는 기쁨을 꾹꾹 눌러 참으며 L씨는 어서 본론이 나
   오기를 기다렸다. 차는  어느덧 잠실 대교 부근을 지나 워커힐 사거리
   쪽으로 미끄러지고 있었다.

     "아저씨 그러지말고  오늘 날도 그렇고 기분도  심숭생숭 한데 나랑
   드라이브나 더 합시다. 내 합승 요금까지 생각해서 삯은 후하게 처 드
   릴 테니..."

     "요금을 주신다는 데  마다할 이유가 없지요. 어디로 모시면 좋을까
   요?"

     "예까지 왔는데 다시 시내로 굳이 돌아갈 일 있나요? 저기서 우회전
   해서 그냥 양수리 쪽으로 쭈욱 내 달립시다."

     그녀는 주저 없이 차들이 미등을 깜박거리며 신호 대기를 하고 있는
   사거리를 가리켰다.  말을 하는 폼이  전에도 어느 놈팽이랑 수없이도
   와 본 길인 듯했다.

     "양수리라면 양평 가는  길 아닙니까? 거기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
   는 곳 아닌가요?"

     "그래요, 그쪽으로 쭈욱  빠졌다가 분위기 있는 곳에서 커피나 한잔
   하고 돌아오지요..."




     ☞아홉째 이야기: 택시 기사 L씨의 이중생활(下)

     눈은 점점 그쳐 가고 있었다.
     평일이건 주말이건  언제나 차량으로 붐비는  곳이 워커힐 고갯길이
   다. 스키 캐리어를  장착한 차량들과 그만 그만한 남녀들로 쌍쌍이 히
   히덕 거리는 차들이 대부분 이었다. 모두들 어디로 떠나는 것일까. L
   씨는 창문을 조금  열고는 다시 담배에 불을 붙였다. 부인은 이번에는
   담배를 달라고 하지  않았다. 대신에 작은 핸드백 가방을 열고 콤팩트
   와 립스틱을 꺼내어 막 화장을 고치는 중이었다.
     L씨는 카세트 테이프에 '조용필 골든'이라고 써진 낡은 테이프를 밀
   어 넣고 볼륨을 올렸다. 이쯤 나이의 대부분의 여자들 치고 조용필 싫
   어하는 여자는 없었다. 마침 흘러나온 노래가 '그 겨울의 찻집'이었다.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럼 그렇
   지. L씨는 흡족한 듯 내심 쾌재를 불렀다.

     "노래하면 역시 조용필이 최고지요."

     L씨는 슬쩍 부인을 돌아보며  운장을 땠다. 기분만 잘 맞춰 주면 자
   기가 최고 인줄 알고 열을 올리는 것이 그 나이의 배부른 중년 부인네
   들의 공통된 특성이 아니었던가.

     "어머, 조용필을 좋아하세요.이 아저씨 뭔가를 아시는 분이네. 아휴
   요즘 나오는 노래는 영 노랜지 춤인지 구분이 안가요. 십여 명씩 우르
   르 물려 나와서는 가사만 틀릴  뿐인 똑같은 노래에 비슷한 춤으로 철
   모르는 학생들만 유혹을 하니...또 거기에다가 그것을 앞 다투어 방송
   하는 방송사의 어른들이나.. 몰지각 하기는 다 마찬가지 에요. 요즘은
   가요 대상을 받은 노래도 다음해 지나면 잊혀져 버려요. 그게 무슨 노
   랩니까. 몇 년, 몇 십년이 지나도 꾸준히 불리는 노래가 노래지요. 요
   즘은 노래에 혼들이 없어요."

     "맞습니다. 노래하면 실력으로 보나 노래로 보나 당연  옛날 가수들
   이 더 낫지요."

     부인은 기다렸다는 듯 열을 올리며 말을 이었다. L씨는 적당히 맞장
   구를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하는 투가 영 못 배워먹은 여자는 아니
   었다.
     차는 시내를 빠져 나오자 한적해진 길을 속력을 내며  내달렸다. 구
   리를 벗어나면서부터 차량들이 좀 뜸해졌다. 몇 곳의 공사  구간을 지
   나자 청평호를 낀 이차선 도로가 주욱 펼쳐져 있었다. 이제 곧장 내달
   리면 양수리에 닿는다. 양수리에 닿아서 이 여인은 또  무엇을 요구할
   것인가.
     물안개가 채 가시지 않은 호반 길을 삼십분여 내달리자 양수리에 닿
   았고 어느덧  시간은 하오로 치닫고 있었다. 검문소 삼거리에서  차는
   양수대교를 건너지  않고 춘천 가는 길로 좌회전을 했다.  양수대교를
   건너자마자 철길을 건너 좌회전을  해도 되었지만 강 건너보다는 아무
   래도 강 이쪽이 개발이 더 된 까닭이었다.
     양수리. 남한강과  북한강, 두 개의 강줄기가 합쳐져 하나로 된다는
   뜻에서 양수리란 지명이 붙은 곳이었으나 늘어나는 러브호텔과 까페들
   로 오히려 불륜의 장소로도 더 많이 이용되고 있는 아이러니한 곳이기
   도 했다.
     강 언덕에 궁전처럼 지어진 몇 개의 러브호텔과 음식점들을 스쳐 지
   나 얼마쯤을 달릴  무렵, 한 곳을 가리킨 부인이 차를 세우자고 했다.
   그곳은 '파라다이스'란 간판이 걸린 중세 유럽의 성 모양을 본딴 마치
   궁전을 방불케 하는 호텔이었다.
     젠장, 파라다이스라니..  파라다이스란 천국이 아니던가. 착한 짓을
   해야만 갈 수 있다는 이상향의 나라가 아니던가. 그런데  대낮 불륜족
   이 대부분인 이런 곳의 이름이 파라다이스라니... 어차피 죽어서 지옥
   에 갈 몸들, 살아서라도 낙원을 즐겨보잔 이야기인가. 그 추한 몸들을
   지느러미처럼 흔들어 가면서... 그래, 어디 갈 때까지 가 보자...
     심호흡을 한 번 길게 내뱉은  L씨는 각오한 듯 주차장으로 미끄러지
   듯 차를 몰았다. 차가 주차장에 깔아 놓은 자갈에  부딪히는지 바퀴에
   서 자그락 거리는 소리가 났다.
     차에서 내리자 갑자기 부인이  곁으로 다가오며 능숙한 폼으로 팔장
   을 꼈다.

     "차들이 많군요. 아직은 대낮인데..."

     멎적어진 L씨가 한마디 던졌다. 그도 그럴 것이 주차장에는 벌써 이
   십여대의 차들이 저마다 번호판을  가린채 얌전히도 주인들이 일을 끝
   마치고 나올때를 주욱 늘어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대꾸 대신 부인은  L씨를 호텔 일층에 마련된 까페로 이끌었다.
     카페 안은 어두웠다. 일부러 아는 사람을 피하게 하기  위해 조명이
   어둡다는 사실을 L씨가 안  것은 좀 더 이 생활에 프로가  된 한참 후
   의 일이었다.
     이름 모를 피아노 반주가 흐르고 있던 실내는 훈훈했다.  저만치 벽
   난로가 타고 있는 구석 자리  옆으로 자리를 잡은 부인은 웨이터가 다
   가오자  L씨에겐 묻지도 않고 양주 한 병과 안주를 시켰다.

     "탁 까놓고 얘기합시다. 기사 양반..."

     "뭘... 말입니까?"

     대(大)자 패스포트 한 병이 반 이상 비워진 후였다. 별 말없이 술잔
   을 비우던 그녀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내가 왜 이러는지 알지요? 이런 경험 처음이세요?"
     "처음입니다만..."

     대강의 짐작을 했지만 L씨는 짐짓 의외의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얼마 주면 되겠어요?"

     "알아서 하세요. 주는 데로 받아야지요."

     말이 채 끝나기 무섭게 그녀는  핸드백을 열고 수표 한 장을 꺼내어
   L씨 앞으로 내밀었다. 하얀 오십 만원짜리 수표 한장이었다.

     "아니... 이렇게 많이는 필요 없습니다."

     의외로 액수가 많았던지라 L씨는 돈을 받지 않고 잠시 망설였다. 오
   십 만원이면 입금 빼고도 일주일은  부지런히 뛰어야 벌 수 있는 돈이
   었기 때문이다.

     "그냥 받아  넣어요.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것은 어디까지나
   택시비가 아닌 가요. 택시비를 조금 더 얹어 주었을 뿐인데 뭐가 잘못
   될 것이 있답니까?"

     그녀는 까르르 소리를 내어 웃기까지 했다.
     L씨는 잠시 자신이 화대를 받는 창녀가 된 느낌으로 앉아 있었다.
   애라...모르겠다. 어차피 썩어빠진 세상인데..L씨는 연거푸 남은 술잔
   을 비워 냈다.

     "호호... 이제야 좀 말이 통하는군요."

     갑자기 부인의 말이 많아졌다.

     "후...내가 오늘따라 얼마나 고생을 한지 알아요. 아. 내가 돈이 없
   어 차가 없어 택시를 잡겠어요. 다 이유가  있어 서지요. 그런데 오늘
   일진이 영 아니라  걱정했어요. 오늘따라 미남 택시 기사 양반들은 다
   어디로 가고 늙은 쭈그렁  탱이들만 지나가는지 얼마나 고생을 했다구
   요. 그냥 집으로  들어가서 찜질방이나 갈까 하고 막 돌아서려는데 후
   후.. 우리의 젊은 오빠가 나타난거지요."

     아무렇지 않게 그런 말들을 내뱉는  것을 보니 이미 그녀는 이런 식
   의 남자 사냥에 익숙한 모습이었다. 어디 그녀뿐이겠는가.
   그녀의 익숙한 말솜씨와 행동은 이미 여럿 그런 친구들이 있는 듯했다.
     까페를 나오자 시간은 저녁 다섯시를 넘기고 있었다. 기다렸다는 듯
   검정 가운을 입은 종업원 하나가 다가와 둘을 엘리베이터 앞으로 안내
   했다. 5층에서 엘리베이터가 내려오자 문이 열리며 흡족한  표정의 남
   녀 한  쌍이 팔짱을 낀 채 나오고 있었다. 이름 그대로  파라다이스를
   본 얼굴들이다.

     "제일 높은 층으로 주세요"

     올라가면서 그녀는 한마디했을 뿐이다.  07호실이라고 써진 방 앞에
   서 따라온 종업원에게 방값을  지불한 그녀는 방안으로 들어가기가 무
   섭게 L씨의 몸으로 달라붙었다. 술기운이기도 했지만 몹시도 남자에게
   굶주린 모양이었다.
     반쯤 열려진  창문으로 저만치 북한강의  강물이 넘실거리며 흐르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방안에는 계속해서 끈적거리는 유혹이 흐를 뿐이
   다. 부인은 어쩌면 그렇게 제 남편에게도 해주지 않았을 법한 온갖 몸
   짓들을 L씨에게 해대었다. 더는  견디지 못한 L씨는 황급히 옷을 벗어
   던지고 부인의 일에 동참했다. 적어도 택시비 이외로 받은 팁 값은 해
   야 되겠다는 투철한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호텔  파라다이스는 후끈한 남녀들로  인하여 밤낮을 가리지
   않고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들은 아무도 서로에 대하여 묻지도 않았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들 사이에는 얼마간의 돈이나 몸의 대화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그리고 후세 그들의  풍광 좋은 정사(情事)를 위하여 북한강은 옛부
   터 그 자리에서 그렇게 흐르고 있었던 것인지... ...

     "저 혹시 연락처라도..."

     처음에 그녀를 태웠던 방배동의 고급 빌라 단지 부근에 이르러 차를
   세울 무렵,  L씨는 차에서 내리려는 그녀를 향해 물었다.
     시간을 보니 저녁  아홉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그녀와 함께 호텔방
   에 들어간지 세시간  남짓 얼마나 시달렸던지 L씨는  다리가 후들거려
   어떻게 브레이크와  액셀레이터를 밟으며 운전을  여기까지 해 왔는지
   정신이 몽롱했다. 과연  예상은 했지만 그녀는 한창 왕성한 중년 여성
   답게 끝없이 L씨를 괴롭히며 확실하게 본전을 뽑는 눈치였다.

     "아저씬 매너 없이 왜 그래요?"

     차에서 내린 그녀가 탁 쏘아 붙였다.

     "저도 실례인 건 압니다만 워낙 부인이 마음에 들었거든요. 궁합?도
   잘 맞았고..."

     저만치 두어걸음 옮기던 그녀가 깔깔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궁합이 어쨌다구요. 나참.. 솔직히 말해 줄까요. 지금 내
   기분이 어쩐지. 솔직히 본전 생각이 간절한걸 요. 젊은 사람이 그렇게
   금방 나가 떨어져서 어디... 쯧쯧..."

     그녀는 더 이상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언덕길을 거슬러 올라갔다.
     즐길 때는 즐기고 확실하게 맺고  끊을 줄 아는 과연 프로다운 모습
   이었다. 그래야 지질한 후환도 없을 것이다.
     자신에게 철저한 이중 생활의 모범을 가르쳐 준 부인이 사라진 언덕
   길을 바라보며 공허하게 담배를 태워  물었던 L씨는 겨우 몸을 추스리
   며 차에 올랐다. L씨의 뇌리  속은 한 몇 시간 푹 자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할 뿐이었다.

     ■글을 쓴다는 걸 알고 택시 모는 친구가 전해 준 자료입니다. 실화
       자체를 떠나 이제는 비일비재한 일이라고 하더군요. 참 웃기는 세
       상이지요. 궁금하시다구요? 그럼 택시를 몰아보세요.?




       ☞열 번째 이야기: 귀신과의 정사(情事)上.

       민수는 모 프로 야구단의 잘 나가는 주력 투수이다.  억대의 몸
     값을 받고 첫해에  15승이라는 성적을 올려 톡톡히  이름 값을 한
     그는 어느덧 데뷔 2  년째에 접어들었음에도 2년생 징크스를 무색
     하게 하며 총알  같은 공을 씽씽 뿌려 대  상대 팀 타자들을 벌벌
     떨게 하곤 했다.

       그런 민수에게 약점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한창  혈기 왕
     성한 미혼의 선수답게 주변에  항상 수많은 여인들을 거느리고 다
     녔다. 즉 여자를 지나치게 밝히는 것이 민수에게는 최대의 흠이자
     약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민수는 장래가 총망되는 억대의 선수
     인데다가 외모 또한  영화배우 못지않게 출중했던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민수의 주변은 끝없이  여자들이 맴돌았고 그는 별 어려움
     없이 여자들을 골라가며 잠자리를 같이 하곤 했다.

       민수의 최대 강점은 뭐니뭐니해도 불같이 솟구치는 강한 체력이
     었는데 경기 전날  새벽까지 잠을 안 자고 여자와 데이트(?)를 해
     도 다음날이면 변함없이 상대 타자들을 넉다운 시켰다. 오히려 민
     수에게 여자들과의 육체적 교류는 강한 운동에너지의 원천처럼 느
     껴지게까지 되었다. 심지어  감독의 불호령이 떨어져 외박이 금지
     된 날일 나치면 다음날 이상하게도  그의 공은 맥을 못 추고 상대
     타자들에게 통타 당하곤 했던 것이다.

       그러던 민수의 신앙이  어느 날 싹 깨어지고  마는 일이 일어났
     다.
       때는 프로야구가 한창  전기 리그 종반으로 치닫던 어느 날, 가
     장 중요한 시점에서 팀이  내리 5연패를 당하자 화가 치민 감독은
     전 선수에게 외박과 금주령을 내렸다. 선수들의 정신 무장을 다시
     하자는 의도  였던 것이다. 일이 그렇게 되자 가장 몸이 단  것은
     물론 민수였다. 하루라도 여자를 만나지 않으면 좀이 쑤셨던 민수
     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감독의  불호령이었다. 그렇다고 지시를
     어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쌍방울 레이더스와 3연전을  치르기 위해 서울에서 전주로 이동
     을 했던  팀은 전주에 있는 C  호텔에 여장을 풀고  주말 3연전에
     대비했다. 문제의 C호텔은 귀신이 나온다고 알려져 있어 징크스에
     예민한 야구단은  여간해서 묵기를 꺼리는  곳이었으나 팀이 주로
     묵던 모 호텔이 수리를 하면서 할 수  없이 팀은 C호텔로 왔던 것
     이다.

       저녁에 비가 조금 왔던  관계로 일찌감치 훈련을 끝마치고 호텔
     로 돌아온 선수들은 내일  있을 3연전에 대비해 작전 구상들을 하
     면서 휴식들을 취했다.

       그러나 민수는 이래저래 죽을 맛이었다. 안 그래도 작년에 전주
     에 와서 모 나이트 클럽에서  만나 사귀어 오던 아가씨 하나를 만
     나기로 미리 약속까지 정해 두었던 터인데 팀의 성적 하락으로 물
     거품이 되어 버린 것이다.

       마음이 뒤숭숭해진 민수는 일지 감치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호텔 창밖을 바라보니 비는  그쳤다 오다가를 반복하며 내일의 경
     기를 불투명하게 하고 있었다.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던 그녀
     는 화를 내며 매몰차게 전화를 끊었었다. 젠장, 여자가 어디 자기
     뿐인가...

       새벽 두시. 호텔  5층 창문밖에는 짙은 어둠과 함께  아직도 빗
     방울이 뜯고 있었다. 통상 같이 방을 쓰곤 하던  룸메이트인 선배
     투수 K는 허리  디스크가 번져 갑자기 병원으로  실려 간 터였다.
     예상대로 라면 지금쯤은 무슨  핑계라도 대고서 호텔을 빠져 나와
     가까운 곳에 방을  잡고서 여인의 품 안에서  시간 가는줄 모르고
     노닥가리고 있을 시간인데 민수는 생각할수록 부화가 치밀었다.

       바람이 부는지 연신 창문이 흔들리는 소리가 났다. 제대로 잠이
     오지를 않자 민수는 냉장고의 문을 열고 캔 맥주 두 개를 꺼내 창
     문 가로 가져갔다.  이 정도 비라면 전주의 그라운드 사정은 뻔하
     다. 어차피 게임은 물 건너 간 것이다.민수는 천천히 맥주를 들이
     켰다. 작은 스탠드  불만을 켜 놓은 방안은 희미했고 커튼을 열어
     놓은 통에 창문  유리를 통하여 민수의 모습이  침침하게 내 비췰
     뿐이다. 창 밖도 어둠뿐이었다.호텔 뒤편이 야산이었기 때문에 그
     저 칠흑 같은 어둠이 빗속에 일렁거리며 춤을 출 따름이었다.

       새벽 두시 반, 갑자기 문 밖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려 오더니 똑
     똑 정확하게 두 번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빈속에 연거푸 들
     이마신 두 캔의 맥주로 인하여 약간 정신이 흔미한 상태였기에 민
     수는 혹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 아닌가 귀를 의심했다. 이상하군,
     이 시간에 룸 서비스가 올 일도 없는데.  민수가 고개를 갸우뚱거
     리는 사이 다시 똑똑 두  번의 문 두드리는 소리가 틀림없이 들려
     왔다.

       "누구십니까?"

       혹시 자신처럼 잠못 이루는  팀 동료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
     어 민수는 조심스레 문가로 다가갔다. 하지만 기분이 약간 이상하
     단 생각을 떨치지 못했다.

       "저... 문 좀 열어 주시겠습니까?"

       목소리의 주인공은 뜻밖에도 애띤 소녀의 음성이었다.

       "예, 무슨 일이죠?"

       상대가 여자인지라 약간 안도감이 든 민수가 다시 물었다.

       "예, 옆방에 든 투숙객인데요. 대단히 실례 인줄은 알지만 잠도
     오질 않고 무서워서요... "

       순간, 민수의 눈이 재빠르게 빛났다. 이런 제길... 떡이 저절로
     굴러 들어오는 경우도  있네. 하지만 이래 놓고 야중에 돈을 요구
     하는 악질 콜걸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민수는 문틈을 통하
     여 복도 밖을 여자를 확인했다. 헉..민수는 다시 한 번 놀라며 마
     른침을 꿀꺽 삼켰다. 긴 생머리를 늘어트리고 잠옷 같은  것을 걸
     친 여인의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하긴..저도 적적하고 잠이 안 오기는 마찬가집니다. 마침 냉장
     고에 맥주도 있고...."

       그러면서 민수는 문을 열어 여인을 방으로 안내했다.  가까이서
     보니 여인의  모습은 더욱 더 매혹적이었다. 약간 창백한  얼굴에
     화장끼 없는 얼굴이었으나 잠옷 바람으로 겁도 없이 처음 보는 남
     정네의 방으로 돌진하는 것을 보면 아무튼 대단히 끼가 농염한 여
     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 그러면 간혹씩 있기 마련인 여성 펜들
     의 육탄 공세  일른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렇게 야밤에 방으로 처
     들어 온 일은 드믄 경우였다.

       "같이 묵은 남자 친구는..."

       희심의 미소를 지으며 여인의  앞에 털썩 주저앉은 민수는 본격
     적인 일 벌이기에 앞서서 뒷감당을 먼저 생각했다. 한참을 중요한
     시기에 우락부락하고 인상 험한  그녀의 남자 친구가 그녀를 찾아
     문을 따고 쳐들어와 펀치를 날릴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살폿  웃음을 머금으며 대답 대신 고개를 가로  저었다.
     이 방면에 도통한  민수는 프로다운 눈을 번득이며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통상 이런  시점에서 여자의 앞뒤를 들추는 건 하등의 도
     움이 안 된다는 사실은 익히 터득한 터였다. 그냥 서로를 묻지 말
     고 즐기기만 하면 그만이다. 일이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서로
     의 직분으로 돌아가면 그만이다.

       맥주 캔 하나를 따서 그녀에게 건넸지만 두어 모금 마시는 시늉
     을 했을 뿐이다. 대신에 그녀가 노골적으로 속살을 보여 왔으므로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민수는 용기를 내어 그녀 옆으로 다가갔다.
     아마도 같이 투숙한 남자 친구가 제대로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
     고 잠이 들었거나  아니면 여자를 홀로 바람 맞춘, 어쨌거나 여자
     는 지금 몹시 외로운 상태 입에는 틀림이 없어 보였다. 어쩌면 이
     시점에서 여인에게 구차스런 질문을  던지는 것은 오히려 매너 없
     는 행동일 것이다.

 



       ☞열 번째 이야기: 귀신과의 정사(情事)下.

       민수는 용기를  낸 김에 더 내어 살며시 그녀의 손을  잡아 보았
     다.  놀랍게도 여인은 민수의 손을 끌어 그녀의 허리춤으로 가져갔
     다. 젠장, 나보다 더 급하시군...에라 모르겠다. 민수는 여인을 들
     어 침대로 눕히고는 성급히 잠옷을 풀어  내렸다. 여인은 반항하지
     않았다. 오히려 거친  숨소리를 내며 민수를 더욱 끌어  당겼을 뿐
     이다. 민수는 거의  폭팔 직전의 풍선처럼 숨이 막혀  왔으나 프로
     답게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한  번으로 끝내기엔 여인의  미모가
     너무 서늘하도록 아름다웠던  때문이다. 민수는 서서히 여인의  몸
     을 쓸어 내렸다. 야구공을 뿌릴 때와는 다른 또 다른 기술이었다.

       갑자기 섬짓,  그 이상하다는 생각이  불현듯 민수를 스친  것은
     그로부터 불과 오분 후의 일이었다. 처음에는  자신의 몸 아래에서
     신음을 토하고 있는 여자가  자꾸  영화 화면처럼 흐릿하게 포개져
     보인 것이었는데 민수는 처음에는  그것이  자신이 마신 술 때문인
     줄 알았다. 더욱  더 이상한 것은 여인의 얼굴이  지나치게 창백했
     다는 것과 눈동자가 초점이 전혀 없이 멍하니  떠져 있다는 점이었
     다. 거기에다가 자신의 허리를 꼭 잡고 풀어  주지 않는 강한 힘은
     또 무엇인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민수는 조심스레 여인의 눈치
     를 살피며 묻고 말았다.

       "그런데 아가씨 몸이 왜 이리 찬지  모르겠군요. 밖에서 비를 맞
     고 이제껏 헤매다 온 사람 같으니..."

       거기 까지  생각한 민수의 머리에  문득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가만 몸이 차다는 것은...그래, 마치 얼음처럼 냉기가 가시질 않는
     다. 혹시...민수는  온 힘을 다하여 여인을 밀쳤다. 갑자기 머리가
     쭈뼛해지고 소름이 돋아 올랐다.

       "후후.. 날 버리고 어딜 가려고... 이미 늦었네..."

       여인이 갑자기 팔에 힘을 주며 민수를 꼭 끌어  않았다.  어떻게
     나 그 힘이 강했던지 민수의 발버둥은 헛된 것이 돼 가고 있었다.

       "날 버리고 못 간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널 죽여 버리겠어..."

       그녀는 몸을 바꾸어 민수의 몸  위에 걸터앉더니 갑자기 힘껏 민
     수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잠시 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긴
     했으나 곧 숨이 가물가물 해지는 것으로 보아 꿈은  분명코 아니었
     다. 민수는 마지막  힘을  모아 살려 달라고 힘껏 소리치기 시작했
     다.

       잠시의 시간이 흐르고 점점 기억이 희미해지는 찰나,  갑자기 밖
     에서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려 왔다.

       "이봐! 박민수. 무슨 일이야? 대체 왜 그래...문열어 문!"

       순간 여인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해 갔다.

       "이런... 하필이면... 거의 다 되었는데..."

       밖에서는 종업원이  달려 왔는지  비상키를 이용해 문 여는 소리
     가 들려 왔다.  그녀는 억울한 표정으로 잠시 문  밖을 바라보더니
     훌쩍 창문 밖으로 뛰어 내렸다.

       "귀신... 귀... 귀신..."

       말을 잊지 못하고  부들거리고  있는 민수를 바라보며 뛰어 들어
     온 동료 선수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젠장. 꿈을 꾼 거겠지. 도심 한복판 호텔 방에 귀신은 무슨..."
       "이봐! 박민수 자네 혹시 몽유병 있는 것 아니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물로 목을 축인 민수가 입을 열었다.

       "정말 귀신이었습니다.  차가운 얼굴에 처절하도록  아름다운 얼
     굴이었죠. 처음에는 저곳  탁자에 앉아서 둘이 맥주를  마셨었는데
     침대로 가서 일을 시작하려 하자  갑자기 제 목을 조이더니 창문으
     로 훌쩍 뛰어 내리는 것이었습니다."

       "앗! 이건..."

       팀의 주전 포수인 B가 갑자기  유리컵  잔을 들고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이건 틀림없는 여자의 입술 자국 같은데... "

       "그래요. 우린  캔 맥주를 따서 유리잔에 부어 몇 잔을 마셨죠.
     그녀는 한 잔인가 빼고는 거의 입에 대지 않았지만..."

       정말로 탁자  위에는  누가 보아도 두 사람이  앉아서 술울 마신
     흔적이 역력했다.

       "혹시 그녀가 앉았던 자리가 이쪽 창가 쪽이 아니었나?"
       "예 맞아요. 그녀는 그쪽에 있었죠. 저는 이 쪽에 앉았고.."
       "그럼, 자네 말처럼 귀신이 틀림없네. 이쪽을 보십시요?"

       B는 어느새 사람들이 모여들어 웅성거리는  좌중을  둘러보며 귀
     신이 앉았다는 의자 밑을 가리켰다.

       "여기... 틀립없이 귀신이 있었어요. 하지만 귀신은 술을 마시지
     못했죠. 우리와는 엄연히  다른 차원의 에네르기 같은  환영이었을
     테니까."

       의자 밑에는 그냥 쏟아 부어진 듯한  맥주로 인하여 흥건하게 젖
     어 들고 있었다.

       며칠 뒤, 죽은  영혼을 불러내어 구명 시식을 잘  하기로 이름난
     C모 법사가 호텔로  찾아와 구명 시식을  하며 그 여자  귀신을 불
     러내었다. 그녀는 약  7년 전에 그 방에서 남자 문제로  인하여 창
     문으로 뛰어내려 자살을 한 여인의 귀신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갑
     작스런 죽음으로 인하여 한을 풀지 못하고  차원을 넘어 자신의 죽
     은 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 구명 시식  이후로 그녀가 계
     속 나오는지는 알아보지 못했다.

       교회 목사님이 들으시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하시겠지만 이
     것은 엄연히 사실로  일어난 일이다. 작년 여름에 일어난  이 사건
     을 아마 기억하는 독자 분들도 있을 것이다.  다만 정사 신은 글쓴
     이 임으로  꾸민 픽션임을 밝히고  싶다. 실제로는 호텔  복도에서
     주로 목이 없는  형태로 귀신은 자주 목격되었다고 한다.  구명 시
     식을 한 것도 사실이다.

       내리 글 쓴  김에 말 좀 해야겠다. (물론  일부 성실하신 성직자
     나 목사님들께는 죄송스럽지만..) 일부 교회에서는 이런 귀신의 일
     을 무조건  사탄으로 규정하며 자신의  교회만이 구원  운운하는데
     참으로 웃기는 일임을 독자들은 반드시 알아야  한다. 요한 계시록
     에 그런 말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이다음 심판의 날에 자
     신의 구원을 받을  지파는 십사만 사천 기독교  지파  가운데 오직
     하나가 될 것이라고...  요한 계시록이 잘못된 사본이라면 별 문제
     가 없지만 만약  정본이라면 심각하게 생각할 문제이다.  교회들은
     저마다 자신의 종파가 유일  인양 떠들지만  실제로 대부분의 교회
     는 사탄이 이미 지배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그 만큼 참된 종교
     는 찾기에  드물어졌다. 지금 문 밖의  십자가를 보라...물론 작은
     개척 교회들도 수두룩하지만  대부분의 교회들이 기부금을  모아서
     오직 궁궐처럼 자신의 성전만 크게 짓는 데에 돈을  물쓰듯하고 있
     다. 심지어는 온통 한 장에 수십 만원  호가하는 이태리째 수입 대
     리석으로 교회를 짓고 좋아하는 자들도 보았다.  그 돈이면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빵을  구할 돈인데 말이다. 그것은 곧  그 교회가
     이미 사탄의  지배를 받고 있다고 밖에  볼 수가 없다. 그  교회에
     나가 신자들이 배우는  것은 사탄의 물욕뿐이다. 참으로  안쓰러운
     일이다. 물론 절도 썩은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요다음 룸싸롱과 호
     텔을 밥먹듯이 드나드는 돈 많은 절 스님네들의  이야기를 올릴 때
     언급하겠다.

       독자 여러분만이라도 정확히 판단을 하시고  어디를 다녀도 다니
     세요. 좋은 곳이 다 좋은 곳은 아닙니다. 여러분의 손을 떠난 힘들
     게 번 돈 한푼이 악마를 살찌우게 할  수도 있습니다. 악마는 모습
     이 없습니다. 바로 여러분 개개인 마음속에 깃드는 것입니다.





       ☞11화: 남희(南熙) 이야기

       날씨는 화창했다. 긴 겨울의 그림자가 지나고 바야흐로 봄이 찾
     아온 것이다.
       날씨가 풀리고 봄이 오면 성일 에게는 해마다 찾아오는 가슴 아
     픈 기억이 있다.  바로 그의 고향 마을, 남희에 대한 기억 때문이
     다.
       그러니까 바로 사 년 전의 오늘과 같은 봄날이었다.  바로 이웃
     에 살며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냈던 그녀가 한 줌의 재가되어 저 세
     상으로 떠나간 날이.

       남희는 성일의 고향 마을인 전라도 정읍의 한 시골  마을, 바로
     옆집에 살던 성일 보다 두 살 연하의 여자 아이였다. 그럭저럭 농
     사일로 남부럽지 않게 어린 시절을 보낸 성일에 비하여 옆집 남희
     네는 참으로 어렵게 살아가고 있었다. 농사일을 하던 남희의 아버
     지는 갑자기 논에서 쓰러진  이후로 몇 년째 병석에서 일어나지를
     못했고 설상가상으로  혼자 세 남매를  돌보던 남희의 어머니마저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 가출을 하고 말았다. 그때 남희는 마악 고
     등학교 1학년의 나이였고  밑으로 어린 동생 둘이 있었다. 졸지에
     집안의 가장이 되어  버린 남희는 그 길로  학교를 중퇴하고 돈을
     벌겠다며 서울로 상경을 했다. 그것이 성일이 어린 시절 마지막으
     로 본 남희의 모습이었다.

       그 몇 달  뒤, 서울로 간 남희로부터 고향집으로 돈이 송금되어
     오기 시작했다. 의외로 돈의 액수가 많았던지라 마을 사람들은 놀
     랐지만 들리는 풍문으로 그녀가  서울에서 마음씨 좋은 사람을 만
     나서 큰 회사에 들어갔고  그래서 돈을 잘 버는 것이라  했다. 아
     버지가 병상에 누워 있기는  했지만 남희의 매달 송금으로 인하여
     두 동생은 끝까지 학교를 다녔고 아버지도 꾸준히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남희는 그날 이후로 한  번도 고
     향엘 내려오지 않았다.

       그후, 참으로 뜻밖의 장소에서 성일은 남희를  다시 만났다. 그
     동안 군대를 갔다 오느라 한동안 남희의 일을 잊고 지내던 성일은
     제대 후 시내의  모 관광 호텔 학원을  수료하고 이곳 불야성으로
     일자리를 얻었고 몇 년여를 일해 오던 그해 겨울날이었다.

       다른 날과 별반 다를 바 없이 밀려드는 손님과  시름하던 저녁,
     근처에 있는 모 룸살롱에서 이차를 나온 듯한 서너 명의 사내들과
     아가씨들 틈에서 성일은 낯익은 얼굴 하나를 발견했던 것이다. 그
     녀는 다름 아닌 어린 시절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인해 학업을 포
     기하고 마을을 등졌던 옆집의 남희, 그녀였다.그런 그녀가 술집에
     서 호스티스 일을 하고 있었을 줄이야...놀란 성일이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얼굴을 돌렸을 때는  이미 프런트로 걸어오던 그녀와 얼
     굴이 마주친 뒤였다.

       "앗!..."

       남희는 얼굴이 빨개지며 낮게 신음 소리를 냈다. 놀란  것은 성
     일도 마찬가지 였다.

       "서... 성일오빠...."

       무엇인가 말을 하려던 그녀가  별안간 옆에 팔짱 꼈던 오십대의
     뚱뚱한 사내를 밀치고 쏜살같이 문을 열고 밖으로 달려나갔다.

       "뭐야 이건... 야, 거기 안서!"

       술에 반쯤 취했던 사내는  별안간 같이 이차를 나왔던 아가씨가
     도망을 가자 깜짝 놀라며 뒤쫓아 밖으로 달려나갔다.
       그날, 남희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돈을 환불해 달라며 프런트
     에 서서 고래고래 룸살롱  웨이터를 향하여 전화로 언성을 높이던
     그 오십대의 사내는 기어이 대체되어 온 다른 아가씨와 방으로 사
     라졌다.
       그렇게 남희는 다시 기억 속에서 잊혀지는가 했다. 자신의 불행
     한 치부를 동네의,  그것도 바로 옆집의 오빠에게 들켜 버린 충격
     이 컸던 듯  그녀는 한동안 연락이 없었다. 그러기를 일주일째 된
     어느 날 저녁, 갑자기 남희에게 전화가 왔다. 내심 그녀의 전화를
     기다리던 성일은 반가운 마음에 수화기를 들었다.

       "오빠, 나 술 한잔 사줘. 술이 마시고 싶어."

       다음날 저녁,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일을 하루 빠진  성일은 근
     처의 한 카페에서 남희를 만날 수 있었다.

       "야.. 남희 너, 몰라보게 예뻐졌구나..."

       성일은 놀랐다. 며칠 전엔 둘 다 서로가 놀란 나머지 상대의 얼
     굴을 자세히 볼 수 없었지만  지금 찬찬히 붉은 불빛 아래서 바라
     보는 남희의 얼굴은 어린 시절 코흘리개의 그녀가 아닌 성숙한 여
     인의 모습이었다.

       "오빠.. 사실은 그날, 내가 얼마나 죽고 싶었는지 알아? 하필이
     면 이 넓은 서울 바닥에서 오빠를 만나다니.. 그것도 그토록 추한
     모습으로.. 내 자신이 한심해서 정말 죽고 싶었어."

       "남희야.. 그런 바보 같은 말이 어디 있니?  오빤 네 입장을 다
     이해한다. 오히려 네가 자랑스러운걸.."

       "후후.. 몸을  팔아서 동생들을 가르친 일이 자랑스러운 일이라
     고...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어?"

       "사람이란 말이다.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그런 상황에 처하는
     수가 있다. 마음이  중요한 것이지 행동이나 육체 따위는 결코 중
     요한 것이 될 수 없는 거야."

       "그래도 난, 오빠를 만난 것이 저주스러워.올해를 끝으로 이 일
     에서 손을 떼려 했는데. 어쩐지 강남으로 오기가 싫더니만..."

       남희는 술이 많이 취하여 흐느꼈다. 그러면서 처음 서울에 올라
     와 나쁜 사람들을 만나서  술집에서 일을 하기까지를 숨김없이 털
     어놓았다. 그리고  지금껏 자신이 버티며 살아올 수 있었던  힘은
     집안의 두 동생들과 병든 아버지 때문이라고 했다.

       "오빠, 부탁이 있어요."
       "... ..."

       그녀의 집 앞까지 바래다주고 돌아서는 성일을 남희가 불렀다.

       "제 이야기  마을에 가셔서 하시면 안돼요.  아니, 그 누구에게
     도... 부탁이에요. 그렇게 약속해 주실 수 있는 거죠?"

       "그럼, 난 벌써 잊었는걸..잊어버려라. 지나온 과정은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단다. 지금부터가 중요한 것이지."

       "고마워 오빠..."

       하지만 그 날이 남희를 마지막으로 본 날이 되고  말았다. 불과
     한달 후, 남희는 고향으로 내려가 그 동안 번 돈으로 아버지를 큰
     대학 병원에 입원시켜 수술을  받게 하였고 아버지의 수술이 무사
     히 끝난 날,마을 뒷동산에서 목을 메고 자살을 했던 것이다. 뒷동
     산에 꽃들이 만발하던 봄날이었다.
       영문을 모르는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고개를 흔들면서 그녀의
     죽음을 의아해 했지만 모든 비밀을 알고 있는 성일은 한동안 괴로
     운 나날을 보내야 했다.

       운명이란 과연 무엇이기에. 그날,  모텔에서 남희와 마주치지만
     않았던들 마음 착한 그녀가 수치스러움에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행
     동을 취하지는 않았으리라.  왜 하늘은 남들처럼 학교 한 번 제대
     로 다녀 보지 못하고 일찍 서울로 내몰려 동생들 뒷바라지에 아버
     지의 수술비까지 힘겨웁게 삶을  꾸려 온 그녀에게 마지막 순간에
     죽음이라는 가혹한 올가미를 씌웠던 것일까.

       그녀의 영혼을 좀 더 편안히 쉬게 하려고 했기 때문일까.





                       ☞제 12화: 음흉한 직장 상사들


       여상 졸업반인 혜진은 점점  높아져만 가는 취업 문턱에서 한시
     라도 빨리 일터를 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우연
     히 신문에 모  무역상사에 대리점의 경리사원 모집  공고를 본 후
     응시, 서류 전형에 합격하였다.
       1차 면접시험을 보기 위해 회사를 찾아간 그녀는 그곳에서 최고
     상사인 영업 소장 최소장을 만났다. 아직 사회 경험이  없는 그녀
     에게 대리점 소장이란 무척 높은 위치처럼 느껴졌다.
       그녀를 처음 본 최소장은 의외로 호의적으로 그녀를 대했다. 학
     교 성적도 좋았고 얼굴에 잡티 하나 없는 예쁜 얼굴이었기 때문에
     그의 호의는 별로 이상스런 일이 아니었다.

       "언니, 합격하면 나 맛있는 것 많이 사줘야 해."
       "그래, 잘하면 취직이  될 것 같애. 그곳 분들이 나를 잘 본 것
     같거든."

       공사판 막일을 하는 아버지는  늘 술에 찌들어서 살았고 때문에
     가정 형편이 어려운 처지에서  김양은 한시라도 빨리 취직을 하고
     싶었다. 막냇동생의 희망 어린 시선을 대하면서 혜진은 빨리 취직
     이 되어 동생에게 맛있는 것을 사 주고 싶었다.

       다음날 저녁, "개인  면담과 함께 이력 상황의 확인이 필요하니
     시내 모  백화점 앞으로 나오라"는 최소장의  전화를 받고 혜진은
     아무런 의심 없이 약속 장소로 나갔다. 고졸이라는 학력 제한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사무직으로의 취업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은 학력이 안돼서 위에서 퇴짜를 맞았는데 내가 김양을 강
     력하게 추천을 했지."

       최소장은 혜진의 착한 마음씨에 감동을 했다며 근처의 레스토랑
     으로 그녀를 데려갔다. 최소장의 인간미에 마음을 놓은 혜진은 고
     맙다는 인사를 하며 내친김에 어려운 집안 형편까지 털어놓았다.
       우수한 학교 성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대
     학 진학을 포기한 그간의  사정을 털어놓으며 혜진은 눈물까지 흘
     렸다.

       "자, 다 털어 버리라구. 앞으로 무슨 일 있으면 날 아버지라 생
     각하고 상의하도록 해. 내가 힘닿는 데까지 도와 줄 터이니..."

       "속상 한데 술이나 마시자구."
       "술은 못하는데..."
       "맥주는 괜찮아... 그리고 앞으로 사회생활 하려면 맥주 정도는
     마셔야지.. 오늘 부로 묵은 기분 싹 풀어 버리고 내일부터 새롭게
     출발하는 거야."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고 있는  최소장을 혜진은 딱히 거절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한두 잔만 하던 술이 점차 늘었고  시간은 자정
     무렵이 되어 갔다.

       "흠... 집이 어디라고 했지.."
       "소장님 많이 취하셨어요. 일어서야 겠는데요?"
       "그래, 이런...늦었구나.. 일어나야지..."

       시간이 되어 자리를 일어서던  최소장이 갑자기 의자 옆으로 푹
     고꾸라졌다.

       "어멋 소장님, 괜찮으세요?"
       "으응.. 내가 너무 취했나 보군..날 좀 부축해서 근처 여관으로
     안내해 주지 않으련.."
       혜진은 난감했지만 자신의 취직이 딸린 문제라 그대로 버려두고
     집으로 갈 수 없었다. 자신의 일자리가 위태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을 했기 때문이다.
       최소장의 의도를 전혀 몰랐던  그녀는 정말로 그가 취해서 그런
     줄로만 알고 서둘러 계산까지 하고 레스토랑을 나왔다.
       밤 공기는 차가웠다. 다행히도 근처 가까운 곳에 여관이 있었기
     에 여관까지 늘어진 최소장을 안내했다.

       그러나, 방으로 들어가  최소장을 눕히고 방을 나서는데 갑자기
     최소장의 억센 팔이 혜진의 어깨를 잡았다.

       "왜 이러세요. 소장님."
       "왜, 그러냐구? 몰라서 그래?"

       갑자기 늑대로 돌변한 최소장은 거칠게 혜진을 침대로 끌어다가
     눕혔다. 혜진은 그제서야  최소장의 본심을 파악하고 도망치려 발
     버둥쳤지만 이미 엎어진 물이었다.

       "소장님. 제가 잘못했어요.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잠자코 있지 못해. 다 널 위해서야. 월급도 내가 많이 주고 뒤
     를 돌봐 줄 테니 가만히 있으라구. 알았지?"

       혜진은 필사적으로 발버둥을  쳤지만 그럴수록 오히려 취소장의
     욕정만 부채질할 따름이었다. 두툼한 입술로 혜진의 입을 막은 그
     는 서둘러 그녀의 옷을 모조리 벗겨 냈다.
       아직 단 한 번도 남자의 손길이 닿지 않은 혜진의 살구 빛 가슴
     이 최소장의  시야로 들어왔다. 순간, 이성을 잃은 최소장은 울고
     매달리는 혜진을 힘으로  누른 뒤, 그녀의 순결한 몸 위로 자신의
     더러운 몸을 얹었다.
       태어나서 난생 처음으로 당하는  고통에 몸을 떨며 혜진은 눈물
     을 흘렸지만 이미 때는 늦어 있었다.

       처녀지에서 마음껏 욕심을 채운  최소장은 잠시 후 절정을 맛본
     후 쓰러졌다.

       "너 취직과  보수는 걱정 마.  내일부터 출근하게 해 줄 터이니
     앞으로 내 말만 잘 들으라구. 알았지."

       참담한 심정으로 쓰러져 있는  혜진의 몸을 어루만지며 그 뒤에
     도 최소장은 오랜만에 맛본 흥분 감으로 인하여 몇 번이고 그녀를
     공격했다.

       눈물을 흘리며  누워 있던 혜진은  새벽녘, 최소장이 잠에 빠진
     틈을 타 여관을 빠져나와 경찰에 그를 신고했다. 최소장은 경찰에
     연행되어 신문을 받았고 징역 5년형이 선고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멋모르는 사회  초년병들을 향하여 가해지는 직장 상사
     들의 야릇한 눈길은 지금도 멈춤 없이 계속되고 있다.



 


             제13화: 어느 상경(上京) 소녀의 이야기


       어느 저녁,  나는 성일과 술자리를 같이할 기회가 생겼다. 아는
     선배의 결혼식에서  다시 녀석과 마주친  것이었는데 식이 끝나고
     우리는 자연스레 술집으로 발길을 향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내
     가 전철역에서 '러브호텔 이야기'가 들어있는 녀석의 대학 노트를
     받고 헤어진 후 꼭 8개월 만이었다.

       "글은 잘 써지냐?"
       녀석의 첫 마디 였다.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완전  실패작이야. 역시 사람들의 인식이 새삼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어. 곧 조기 종영을 해야할 처지라구..."
       "젠장, 무슨 소리니?"
       녀석(성일)은 이해가 안된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글의 내용이  내용인지라 각오는 했지만 그간  내게 날라온 몇
     통의 메일은 정말 글쓰고 싶은 의욕을 상실 시키더라."
       "메일이라니?"
       "왜,컴퓨터 통신을 하면 전자 편지라는 게 있어. 일반 편지처럼
     전자 메일을 통해 편지를 주고받고 하는 건데."
       "그게 어때서?"

       "한마디로 수준 낮은 소설이래."
       "기가 막히군. 그 수준의 잣대가 도대체 뭔데?"
       "일종의 인식의 차이이지. 연예인은 연예가 뒷 얘기를 쓸 수 있
     는 거고, 정치가는 정치 이야길 쓰는 거고, 내 글은 러브호텔에서
     의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을  모았을 뿐인데 러브호텔이니까 저질이
     라 이거지."
       "그러면 그런 사람들은 사랑하는  애인 생기면 호텔 한번 안 갈
     사람들이군. 성(性)이라든지 섹스에 있어서는 관심도 없는 사람들
     인가 보네."

       "근데, 그건 그렇지가 안으니까 우습지."
       "그래, 너도 개의치마. 세상엔 그런 인간들이 반드시 있기 마련
     이니까. 그런 사람들 알고 보면 다 똑같아.  네겐 네 신념이 있는
     거고 너는 그  신념대로 밀고 나가면 되는 거야. 애초의 취지대로
     러브호텔에서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을  세상에 알려야겠다는
     그 취지대로 계속 글을 쓰라구."
       "하지만, 요즘 의욕이 많이 상실된 건 사실이야.그런 메일 한두
     통 받고 나니까 기운이 쏙 빠지더라구. 애초에 자료 수집된 한 삼
     사십 개의 이야기 중에서 이십 여 개만 글로 만들고 끝을 맺을 생
     각이야."

       "이해한다. 하지만, 끝까지 최선은 다하길 바래. 그래야 자료를
     넘겨준 나도 보람이 있잖아. 세상엔 별난 사람들이 다 있는 거야.
     그런 사람들 치고 글 끝까지 읽고 그러는 사람들  하나도 없다구.
     제목만 보고 괜스레 한마디 던질 뿐이지."
       "과연 그럴까?"
       "그럼. 대신에 그 글을 재미있게 읽을 보이지 않는 독자들도 많
     을 테니까. 그 이야긴 그만하고 내 얘기 한번 들어볼래,노트에 적
     어 놓지 않은 숨겨둔 이야기거든."

       작가 주). 1번의 시작하기를 보시면 윗 글이 이해 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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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이어 터지는 재벌 그룹들의 부도와 수출둔화, 경제 사정의 악
     화는 서비스 업계에도 여지없이 그 영향을 미쳤다. 모텔 불야성도
     예외는 아니어서 하루에도 몇  바퀴씩 돌리던 객실이 이제는 손님
     이 차지 않는 날이 더 많을 정도로 썰렁해졌다.

       "큰일이군. 손님이 줄어서..."
       짠돌이 사장은 종업원들을 모아 놓고 혀를 끌끌 차며 이번 달부
     터 월급을 20% 삭감한다는 발표를 했다.

       "젠장, 당장 이 짓을 때려 치든지 해야지. 더러워서..."
       성일은 모처럼 끊었던 담배에 다시 불을 붙이며 투덜거렸다. 정
     치권의 몇 몇 놈들이 저지른  대형 비리의 불똥이 이렇게 하급 서
     민들에게까지 영향이  미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한 일이다.  정말
     생각할수록 열받는 일이었다.

       일요일 하오의  여관은 절집처럼 한산했다. 술집이나  유흥가가
     많은 도심의 여관일수록 일요일엔 손님이 뜸한 편이었다.
       일요일엔 사장도 일찌감치 집으로 들어가는 편이어서 성일은 꾸
     벅 꾸벅 졸면서 프런트를 지키고 있었다. 이런 날은  가뭄에 콩나
     듯 들어서서 단잠을 깨우는 손님들이 오히려 귀찮은 존재 였다.

       그녀 유미가 모텔의 문을 열고  들어선 것은 세 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유니폼을 아무렇게나 구긴 채 의자에 비스듬히  누워
     서 눈을 감고 있던 성일은 본능적으로 눈을 떴다.
       "어서 오세요."
       잠결이라 목이 잠겼던 성일은 재빠르게 몸을 일으켰다.
       "저... 손님이 아니구요..."

       어색한 동작으로 현관 문을 열고 들어선 그녀는 쑥스러운 듯 머
     리를 긁적거렸다.
       "무슨 일로 그러십니까?"
       한마디 질문을  던져 놓고 성일은  직업적으로 재빠르게 그녀를
     살폈다.
       그녀의 나이는 한 스물 두어 살쯤 되었을까. 얼굴은  제법 반반
     한 편이었으나 긴 머리는 싸구려 플라스틱 핀으로 등 뒤로 넘겨져
     고정되어 있었고 검정색 청바지에 오렌지색 마이의 균형이 어딘지
     모르게 어색함을 풍기고 있었다. 옆구리에는 옷이 들었는지  제법
     큼직한 가방 하나가 끌리듯 들려 있었다.

       "저어.. 드릴 말씀이 있거든요."
       한참 만에야  결심한 듯 그녀는 성일에게 말했다.
       "네, 듣고 있으니 말씀을 해 보세요."
       조선족 교포 같기도 했으나  억양을 들어보니 충청도 사투리 냄
     새가 묻어 있었다.  잔뜩 호기심이 인 성일은 프런트 데스크 옆에
     마련된 소파에 그녀를 앉히고는 재차 물었다.

       "저... 이곳에서 일을 하고 싶거든요."
       "일을? 무슨 일을요?"
       그녀의 뜻밖의 말에 성일은 의아한 생각이 들어 다시 물었다.
       "저.. 이곳에서 밤에 남자들이 오면 손님을 받고 싶어요.. 괜찮
     으시다면..."
       "옛?..."
       성일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얼굴도 반반하고 나이도 아직 어
     린 그녀의 입에서 이게 웬 날벼락 같은 말인가.
       "다시 말씀을 해 보세요. 무슨 말씀인지 이해가 안 가는군요."
       "예.. 친 구가 그러는데.. 이런 곳에서 일을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해서요..."

       그녀의 말인즉, 옛날에 고등학교때 친구 중에 가출해서  서울로
     간 친구가  있었다는 것이다. 친구는 당시 호텔이나 모텔  등지를
     돌며 콜걸 생활을 했었는데 돈을 많이 번다고 그녀에게 자랑을 한
     모양이었다.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시골 소읍에서 한두  해
     점원 생활을 하다가 돈이  모아지지 않아서 무작정 서울로 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고향에 남겨진 늙은 부모들과 어린 동생들을 동
     정하듯 내 비췄다.

       "아니 그런데 아가씨가 어떻게  겁도 없이 그런 일을 선뜻 하려
     고 합니까?"
       "일이 어떤 일인지는  친구에게 들어서 대강은 알고 있어요. 저
     희 부모는 늦게 만나셔서 세  남매를 낳으셨는데 몇 해 전부터 아
     버지가 병으로 쓰러  지져서 집안 꼴이 말이 아닙니다. 얼마간 점
     원 노릇을 했지만 그것으로  두 동생들과 아버지 약값을 치르기엔
     턱없이 부족한 돈이지요. 저도 이 일이 나쁜 일이란 건 알지만 어
     쩔 수가 없잖아요."

       "사정은 딱하지만 꼭 그런  일 아니어도 다 살아갈 방도가 있을
     겁니다.그렇다고 모텔이나 여관에서 몸을 팔 수는 없어요. 친구가
     과거에 그런  일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다 없어졌지요.  못
     믿겠다면 친구에게 연락을 해 보세요."
       "작년부터 연락이 끊겼어요. 그러니까 저도 무작정 이리로 찾아
     왔지요."
       "그러지 말고 잘 생각을 해 봅시다. 지금의 섣부른 판단이 이다
     음 엄청난 후회를 부를 수도 있습니다. 본래 그 세계가 한번 발을
     들이밀면 여간해서 빠져  나오기가 어렵거든요. 돈을 많이 번다고
     요. 그건 극히 일부분의 일이에요.금방 몸을 망치기 일수고 번 돈
     도 쉽게 써 버리거든요."

       가뜩이나 남을 이용해 먹으려는 사람들이 판치는 세상에 성일은
     그녀가 그래도 자기에게 걸려든 것이 매우 대행이란 생각을 했다.
     비록 모텔의 벨 보이  생활을 하고는 있었지만 그에게는 최소한의
     양심이 살아 있었던 것이다.
       서울이 멋모르고 순진한 처녀  하나 버리기에 얼마나 쉬운 동네
     였던가.

       "이봐요 아가씨. 다시는 그런 생각 갖지 마세요.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지 정말 모르시는군요. 밖에 나가서 그런 얘기 잘못 꺼내면
     어떻게 되는지 압니까. 돈 많이 준다고 꼬여서 일본이나 홍콩으로
     순진한 처녀들 팔아  넘기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요. 그런 곳으로
     잘못 발 들여놓으면 인생 끝장입니다."

       일이 끝난 저녁, 성일은 그녀를 근처의 식당으로 데려가 식사까
     지 대접하며 회유의 말을 계속했다. 성일의 설득이 효과가 있었는
     지 한참 만에야 그녀는 성일의 말을 듣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모텔 불야성에 그녀를 재운  성일은 다음날 그녀를 선배가 일하
     는 레스토랑으로 데려가 취직을 시켜 주었다.

       "숙식이 되니까 참고  일하세요. 서울은 그런 대로 임금이 지방
     보다는 낳을 겁니다. 시간외 근무를 하면 월급이 꽤 되구요.또 선
     배가 있으니까 잘 보살펴 주실 거고...  어려운 일 있으면 언제라
     도 연락을 하세요."
       "고맙습니다."
       빨간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그녀는 현관가지 성일을 배웅하며 고
     맙다고 연신 고개를 숙였다.
       "고맙기는요.   직업이 그렇다보니 순진한 아가씨들이 한순간의
     잘못으로 잘못되는  것을 많이 봐왔습니다.  저는 최소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성일의 흡족한 기분은  보름을 넘기지 못하고 무참히 깨
     어졌다. 그녀 유미를 소개시켜주었던 레스토랑의 지배인인 선배로
     부터 전화가 왔던 것이다.

       "야, 어떻게 된 거야?"
       "예. 뭐가 잘못되기라도..."
       "임마. 사람을 소개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그 애 일주일째 연락
     도 없이 결근이다. 짐도 다 가지고 갔어."
       선배는 한마디를 더 덧붙였다.
       "무슨 애가 그래? 그만 두려면 당당하게 말을 하던가.  슬쩍 결
     근을 하면 일은 누가 하냐구?"

       세상은 온통 씁쓸한 일 뿐이었다. 성일는 무엇보다 그녀에게 정
     성을 기울였던 터라 마음이 아팠다.그녀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몸
     을 팔고 싶다고 겁없이 모텔 문을 밀치고 들어서던 당돌함으로 또
     어딘가의 문을 두드렸으리라.
       그렇게 쓸쓸한  기억으로 성일의 뇌리  속에서 유미의 이야기는
     잊혀져갔다.

       그러던 한달  후, 전혀 뜻밖의  장소에서 성일은 무슨 우연인지
     그녀를 다시 만났다.  친구네 집엘 갔다가 돌아오던 저녁 길 신림
     역 부근이었다. 내리는  비를 피해 잠시 근처의 건물 안으로 들어
     갔던 그는 마침 출근을  위해서 현관으로 들어서는 그녀를 보았던
     것이다. 새련된 머리 모양이며 짖은 화장,짧은 미니스커트의 그녀
     는 한달 전보다는 몰라보게  변해 있었지만 유미 그녀가 틀림없었
     다.

       놀란 성일이 뭐라고 말을 꺼내기도 전에 먼저 성일을 알아본 그
     녀는 고개를  숙인 채 종종걸음으로 지하로 달려 내려갔다.  비에
     젖은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성일은 무표정하게 그녀가 사라진 지
     하의 현관 입구에 쓰여진 간판을 바라보았다.

       [파라다이스 룸. 비지니스 클럽] 예약 환영.

       삼삼 오오 저녁 출근을  하는 젊은 아가씨들을 물끄러미 바라보
     고 섰던 성일은 쓸쓸히 빗속으로 다시 걸음을 옮겼다.




                 제 14화:순결을 잃는 데이트 코스(上)


       다음은 직장 생활 중에 흔하게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 가운데
     하나이다. 여성들이 조금만 더 성에 대한 관념이 강하다면 얼마
     든지 피해 갈 수 있는 이야기이지만 사실은 그것도 그렇게 쉬운
     일만은 아닌 것  갔다. 문제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서 혹은 가
     장 믿었던  사람에게 당하는 일이기에  그만큼 여성들이 무방비
     상태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여성들이 조금만 눈치가
     빠르다면 얼마든지 피해 갈 수 있는 상황들이다. 살아가는데 너
     무 착하고 순진해도 문제가 되는 것이 요즘 세상인가 보다.

       "자 미스 김, 한잔 더 받아. 사회생활 하려면 다 술도 마실줄
     알아야 해요. 너무 순진해도 숙맥 소리를 듣는 다구."
       모처럼 있는 회사  총무부의 회식 자리 였다. 일곱 명의 총무
     부 여직원들과 함께 자비를  털어 회식 자리를 마련한 이과장은
     유독 미자에게 관심을 나타내며 술을 권했다.

       "과장님도... 우리도 술 좀 주세요. 미자만 직원 인가요."
       총무부 언니 격인 미스 신이 그런 과장을 보며 한마디를 던졌
     다.
       "아, 그야 물론이지.다들 술을 잘하는데 우리 미스 김만 아직
     술을 입에도 못 대니 그러지."
       "흥, 다 처음엔 그런 다구요. 조금만 있어 봐요. 미자도 우리
     못지 않을 걸요."
       "하하.. 그럴까?"
       "좋아요.그러면 우리 다같이 건배할까요. 총무부의 무궁한 발
     전을 위하여!"
       "위하여!"

       자정이 다 되어서야 일행은 술집 문을 나왔다.
       저녁을 겸한  술자리 였는지라 많이  마신 술들은 아니었지만
     미자는 처음으로 여러 잔의 맥주를 받아 마신 지라 기분이 묘하
     게 취해 왔다.
       "미자 괜찮니?"
       택시를 잡으려고 늘어서 있는 가운데 미스 신이 물었다.
       "괜찮아요."
       미자는 짐짓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
       "괜찮긴. 얼굴이 발그스름한데 뭘?"

       그때 이과장이 자신의 승용차를 몰고 일행 앞으로 다가왔다.
       "어머, 과장님. 괜찮으시겠어요."
       "그럼, 겨우 맥주 두어 잔 했을 뿐인데. 미스 김과 차에 타라
     구. 내 오늘은 특별히 두 사람을 집까지 바래다 줄 테니?"
       "후, 그러시다 사모님께 혼나시면 저희는 책임 못집니다요?"
       "후후, 별걱정을.. 미스 신은 괜찮은데 미스 김이 취한 것 같
     아서 말이야."
       "오늘따라 과장님이 멋져 보이시네.  웬일로 이런 선심을  다
     쓰십니까?"

       "선심은 무슨. 자기 부하 직원들 위하는 것도 선심인가.다 일
     잘하라고 하는 짓이지."
       이과장은 서른 중반이 조금 넘은 나이 였지만 일찍 능력을 인
     정받아 과장으로 진급을  했고 회사의 신임도 두터운 편이었다.
     자기 휘하의 여직원들에게도 철저하게 일을 시키는 완벽 주의자
     였기에 미스 신도 그의 이런 면모는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참 미스 김은 집이 어디라고 했지?"
       "사당 동입니다."
       "마침 잘되었군. 미스  신이 방배동 이니까 방향도 같은 곳이
     네."
       "호호 그러시다가 사모님이 문 안 열어 주시는 거 아니에요"
       "안 열어 주면 말지. 내가 갈 때가 없을 줄 알아."

       잠시 후 방배역 부근에 미스 신을 내려놓은 이과장은 역을 우
     회전하여 사당동 쪽으로 차를 돌렸다.
       "죄송해요. 과장님. 택시 타고 가도 되는데..."
       미자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괜찮아. 별일도 아닌데 뭘. 참 미스 김은 혼자 사나 보지?"
       "예."
       "후. 외롭 겠는 걸.그래, 서울 생활이 처음엔 누구나 다 그런
     거야. 부지런히 벌어서 어서 시집가야지."

       사무실에서는 무뚝뚝하고  사무적인 이과장이었지만 마음만은
     따스한 남자라고 미자는  생각했다. 더구나 다른 여직원들 중에
     서도 미자에게 만은 친 오빠처럼 잘 대해 주는 그였다.
       "기분도 그런데 우리 이왕 차 탄 김에 드라이브나 할까?"
       사당동 큰길 쪽으로 차가 다다랐을 무렵, 이과장은 짐짓 미스
     김을 처다 보며 물었다.
       "밤에 한강을  끼고 달리는  것도 기분 전환엔 최고라구.  어
     때?"
       미자가 잠시 머뭇거리며 대답을 미루는 눈치를 보이자 이과장
     은 다음 말을 막듯이 한마디를  더 던지며 차를 강변 쪽으로 향
     했다.

       "늦었는데 괜찮으시겠어요?"
       평소에도 차를 타고 한번쯤은  서울의 야경 속으로 달리고 싶
     은 마음이 없지 않았기에 미자는 딱히 거절의 말을 못하고 머뭇
     거렸다. 더구나 그는 가정이 있는 유부남이고 직장 상사 였기에
     다른 뜻이 있으리라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 동
     안 보여진  이과장의 꾸밈없고 성실한  인간성이 그녀로 하여금
     그를 믿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잘못될 것도 없지. 미스 김도 조금은 갑갑할 테고 나도 워낙
     회사 일에 스트레스가 쌓여서 말이야. 한번쯤 이렇게 기분 전환
     하는 것도 나쁠 것 없지."
       이과장의 제의가 별다른 뜻  없는 순수한 제의 였기에 미자는
     그를 따르기로 했다.
       담배 하나는 꺼내 문 그는 능숙한 솜씨로 차를 올림픽 대로로
     진입시켜 강변을 끼고 공항 방면으로 내달렸다.

       "어때? 기분 좋지 않아?"
       "예, 좋아요."
       이과장의 물음에 미자는  웃으며 대답을 했다. 도심을 벗어나
     달리는 차 안에서 바라보는 야경은 아름답기 그지없었고 기분도
     상쾌했다.
       삼 사십 분 남짓  차를 달려 다다른 곳은 강화도 였다. 섬 안
     으로 차를 몰아 해안을 끼고  얼마를 더 달리자 언덕 위에 동화
     의 나라에서나 보았음직한 아름다운 모습의 통나무집 카페 하나
     가 나타났다.

       "자, 내리시지요. 우리 여기까지 왔는데 저기 들러서 차나 한
     잔하고 가지?"
       "어머. 정말 집이 예쁘군요."
       "허허. 미스 김은 이런 곳이 처음 인가 보네."
       "네."
       차나 한잔 마시자는  제의에 미자는 별 의심  없이 그를 따라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이층으로 된 카페 안은  통기타 가수의 잔잔한 라이브 음악이
     흐르고 있는 가운데 수십  명의 연인들이 앉아서 저마다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었다. 처음으로 이런 곳을 들른 미자에겐  모든
     것이 별천지처럼 느껴졌다.

       차를 마시자던 이과장은 처음과는 다르게 종업원이 오자 맥주
     를 시켰다. 미자는 차를 마시겠다고 말하고 싶었으나 주위 대부
     분의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있었기에 분위기에 압도되어 묻지를
     못하고 그가 하는 대로 따랐다. 오히려 잘못하면 촌스럽게 보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운전은 어떻게 하죠?"
       술이 오자 건배를 하자는  그를 바라보며 미자는 걱정스레 물
     었다.
       "이봐. 미스 김. 지금이 몇 신줄 알아?"0
       이과장은 약간은 바보 스럽다는 투로 미스 김을 처다 보았다.
       "... ..."
       "그래, 지금은 새벽 한시라구.한시가 넘었는데 이곳에는 버젓
     이 장사를 하고 또 지금이 가장 손님이 많은 시간이야. 그건 뭘
     뜻하는지 알아.  이런 곳은 정부에서 일부러 풀어 주는 곳이야.
     이를 테면 관광  특구와 같은 곳이지. 조금 마신다고 운전에 지
     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단속을 하는 것도  아니니까 걱정 말고
     마시자구. 다른 사람들처럼 분위기에 어울리면 돼."

       이과장의 말이  오히려 힐책의 성격을  띠었기에 더 묻다가는
     바보가 될 판이었다. 이과장이 거짓말을 하고 있을 줄은 미자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
       "그럼, 시간도 늦었으니 간단히 한잔만 하고 데려다 주세요."
       "그럼, 그야 물론이지. 집에까지 얌전히 모셔다 줄 테니 걱정
     말고 들어."
       이과장은 따스한 웃음까지 웃으며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처음에는 딱 한잔만 먹겠다던 술이었으나 여자는 분위기에 약하
     다고 했던가. 과장의  데려다 준다는 약속도 있었는지라 미자는
     자구 술잔을  들이켰다. 그러면서  이과장은 나름대로 부인과의
     문제나 회사 일로 괴로운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고 미자
     도 어려운 집안 형편을 이야기하며 술을 마셨다.

       "그만 일어나야지."





              제 14화:순결을 잃는 데이트 코스(下)


       분위기가 제법 무르익을 무렵 이과장이 말했다.
       오히려 미자는 좀더 앉아서  분위기에 젖고 싶었지만 못내 아
     쉬운 마음으로 따라  일어섰다. 더구나 별 흑심 없이 자신을 대
     하는 이과장이 미덥기도 했다.
       "괜찮지. 미스 김."
       "예, 좀 어지럽긴 하지만... "
       "늦었으니 이젠 집에 들어가 봐야지."

       시계를 한번 흘깃 처다 본 이과장은 차에 시동을 걸며 미자를
     바라보았다. 차에 오르자  못하는 술을 마셨음인지 졸음이 쏟아
     져 미자는 눈을 감고 있었다.
       이과장은 두어 번 길을  돌고 돌아서 처음 강화도로 들어섰던
     강화 대교 부근으로 차를 몰아갔다. 서울로 빠져나가는 다리 난
     간에서는 마침 음주 단속을  하는지 차들이 꼬리를 물고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죠?"
       차가 멈추고 가지를 않자  이상하게 생각한 미자가 눈을 뜨며
     물었다.
       "큰일인데 이를 어쩌지. 하필이면 오늘따라 음주 단속을 하나
     본데."
       "그럼 어쩌죠?"
       "어쩌긴. 걸리면 면허 정지에 감옥엘 가야 한다구. 일년에 한
     두 번이나 있는 일인데 하필 오늘이 그날이나 보네."
       "야단이군. 음주 단속을 한번 하면 아침까지 꼬박 할텐데."
       난감한 표정을 지어 보인 이과장은 다시 아까 카페 쪽으로 차
     를 몰았다.

       "어떻게 하죠?"
       그때까지도 추호도 이과장의 의도를 모르고 있던 미자는 오히
     려 자신으로 인해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생각으로 미안한 마음
     이 앞섰다.
       "할 수  없지. 아까 카페에 들려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그러나 그들이 카페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불이 꺼진 후 였
     다.
       "이런 카페도 오늘따라 일찍 문을 닫아 버렸네."
       대부분의 카페들이 밤 두 시 정도면 문을 닫는다는 사실을 모
     르는 미자로서는 모든 상황이 우연스레 닥친 것으로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다시 검문소가 저만치 바라다 보이는 언덕길에 차를 주차시킨
     이과장은 연신  담배를 피워 물며  검문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눈치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검문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
     았다.
       "저어... 길이 이곳밖에 없는 거에요?"
       이과장이 차의 시동을 끄고 있던 터라 밤이 깁자 추위가 닥쳐
     왔다.
       "이봐. 미스 김. 여긴 강화도야. 섬이라구.저 다리 하나로 육
     지와 연결된걸 몰라서 묻는 거야."
       진심으로 힘이 드는지 이과장의 목소리에는 짜증이 섞여 있었
     다.

       "죄송해요. 저 때문에..."
       "죄송하긴. 미스  김 잘못이 뭐 있다고. 잘못이 있다면 다 내
     잘못이지."
       얼마간 시간이 흐르자  미자는 자꾸 속이 울렁이기 시작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때까지 멀쩡하던 정신이 다시 흐려지며
     속이 뒤집혔다. 차  문을 열고 길가로 내려선 미자는 먹은 것을
     토해 내기 시작했다.
       "이거 큰일났군."
       어느새 뒤를 따라 내려왔는지  등을 두드려 주며 이과장이 말
     했다. 그 목소리에는 진심으로 걱정하는 마음이 들어 있었다.

       "할 수 없군."
       무엇인가를 결심한  듯 이과장은 미자가  차에 오르기 무섭게
     차에 시동을 걸고는 다시 온 길을 돌아가기 시작했다.
       "미스 김. 나를 어떻게 생각하지."
       운전을 하며 이과장은 미자에게 물었다.
       "뭘 말인 가요. 과장님?"
       "이를테면 인간성이라든지..."
       "... ..."
       "나를 믿지. 미스 김은?"
       "... ..."
       "믿으니까 여기까지  나를 따라서 왔고 술도  마신 것 아니겠
     어. 그러니까 믿은 김에 한번만 더 믿으라구.이런 일이 본래 이
     상하게 생각하면 한없이 이상한 일이지만 믿으면 하나도 이상할
     것 없는 일이지."

       그러면서 이과장이 언덕길 하나를  넘어 차를 세운 곳은 화려
     한 네온이 반짝이고 있는 커다란 모텔 앞이었다.
       "왜, 이런 곳엘..."
       "최선의 선택이야. 미자도 몸이 정상이 아니지만 나도 마찬가
     지야. 또 밤이 깊었고. 검문 때문에 서울로 돌아갈 방법도 없잖
     아. 지금까지 그랬듯이 나를 믿고 따라와 준다면 이곳에서 잠시
     피곤한 몸을 쉬고 몸이라고 씻은 후에 단속이 끝나는 즉시 돌아
     가는 게 어때?"
       "정말 다른 뜻이 있으신 건 아니겠죠?"
       미자는 거절을 하고 싶었지만, 아니 어쩌면 그래야 한다고 생
     각을 했지만 우선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당장 에라도 쓰러져
     잠을 자고 싶은 것은 오히려 그녀 자신인지도 몰랐다.

       "이봐, 미스 김.그런 소리 자꾸 하면 오히려 내가 화를 낼 거
     야. 사람의 선의를 그렇게 색안경을 끼고만 보는 것도 잘못이라
     구. 몰론 세상이 사람을 그렇게 만들긴 했지만."
       이과장은 정말로 별다른 뜻이 없어 보였다. 어깨 한쪽을 그에
     게 부축 당한  채 미자는 난생 처음으로 모텔 안으로 들어섰다.
     흐릿한 그녀의 눈빛 안으로'모텔 하이눈'이라고 써진 간판이 언
     뜻언뜻 스치고 지나쳤다.

       그러나 방으로  들어서기 무섭게 이과장의  태도는 백 팔십도
     바뀌었다. 보이가 숙박료를 계산 받고 나가기 무섭게 그는 억센
     팔로 미자를 끌어안고 그녀를 침대로 쓰러트렸다.
       "악! 무슨 짓이에요 과장님!"
       놀란 미자는 있는 힘껏 발버둥을 처 보았지만 이미 소용이 없
     었다.
       "이봐 미자. 사 사실은.... 난 미자를 사랑한다구..."
       그 동안 서너 시간의 미끼  질을 만회나 하려는 듯 그는 미자
     의 비명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그녀의 옷을 거칠게 찢다시
     피 벗겨 냈다.

       "안돼요 과장님..."
       힘을 잃은 미자의  두 눈에서 굵은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하
     지만 이미 때는  늦어 있었다. 치밀한 계획 하에 오늘을 손꼽아
     기다려 왔던 이과장의 눈에  그녀의 눈물은 오히려 그를 흥분시
     킬 뿐이었다. 날이 밝도록 처녀지에서 마음껏 욕심을 채운 이과
     장은 새벽이 다 되어서야 한쪽 옆으로 몸을 뉘었다.
       담배에 불을 붙이며 울고  있는 미자에게 그는 조금의 죄책감
     도 없이 한마디를 던질 뿐이다.

       "울지마. 여자란 다 이렇게 겪어 가면서 성숙하는 거야. 앞으
     로 내 말 잘 들어. 그러면 아무런 문제 될 것 없으니까."
       그는 신입 여사원이  들어올 때마다 벌써 여러  번째 써 왔던
     오늘의 작전을 돌이키며 만족한 듯 담배를 비벼 끄고 다가가 미
     자를 안았다.

       기실 이과장의  작전 코스는 비단  이곳 강화도뿐만이 아니었
     다. 주로  경기도 권을 중심으로  양수리 방면이나 포천 송우리
     방면, 장흥 유원지 방면,미사리 방면,남한산성 방면, 백마 역이
     나 행주 산성 방면 등, 그 어느 드라이브 코스이건 여자들이 쉽
     게 분위기에 젖을 수 있는 아름다운 경치와 예쁜 카페들이 즐비
     하게 있었고 분위기 있게 술 한잔을 걸치고 서울로 진입하는 곳
     에는 용하게도 평소에는 간첩  한번 제대로 못 잡는 검문소들이
     설치되어 음주 단속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음주 단속이 술집이나
     카페 등 운전자들이 경유할 법한 곳에 설치되는 것은 당연한 이
     치이고 또 그것이 교통사고  예방이라는 주 목적도 있긴 하지만
     이과장과 같은  플레이 보이들에겐 오히려  그것이 여간 고마운
     정책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무슨 정책인지는 몰라도 그런 검
     문소 못 미친 곳들에는 참으로 용하게도 러브 호텔들이 마치 관
     과 짜기라도 한 듯이  들어서서 순진한 처녀들을 유린하는데 일
     익을 담당할 준비를 하고 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세상이 다들 이러는 판인데 방법은 하나 밖에 없다. 여인들이
     여. 그대들의 몸을 알아서 잘 들 챙기시거라. 세상은 다 도둑놈
     들 뿐이니까.... .



                   제 15화: 新 씨받이.


       남자는 연속으로 줄담배를 피워 댔다.
       자신의 부인이 모텔의 남자 종업원과 합께 방으로 들어 간 후
     삼 십분 남짓한 시간을 연속해서 줄곧 담배만 잡고 있었다.
       그 이상한 남자와 여자가 모텔 불야성의 문을 열고 들어선 것
     은 오후 두 시가  좀 넘은 시각, 비교적 손님이 뜸한 한가한 시
     간이었다.

       남자는 서른 중반을 넘긴  나이에 비교적 말쑥하게 양복을 차
     려 입고 있었고 여인은 서른 초반의 나이에 비교적 미인형의 얼
     굴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다른 여느  손님들과 다른 이상했던 점은  둘 다 얼굴
     표정이 굳어  있었다는 점이며 특히  남자의 표정은 불안감으로
     가득했다. 별 이상한  부부도 다 있구나 생각을 하며 그들을 객
     실로 안내를 하고 내려온 미스터 조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무슨 일이 있는 거야?"
       그런 미스터 조의 표정을  보고 프런트를 지키던 성일이 한마
     디를 던졌다.
       "글쎄요. 좋은 일(?)하러 왔으면서 두 사람이 왜 그렇게 불안
     한 표정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군요. 혹시 쫓기는 사람들이 아닐
     까요?"
       "그런지도 모르지.잘 지켜보라구. 요즘 어디 이상한 사람들이
     한둘이어야지..."

       그러나 두 사람의 의문은 잠시  후에 풀렸다. 객실에  부인을
     남겨 둔 남자가 성급히 프런트로 내려왔기 때문이다. 그는 다짜
     고짜 성일을 붙들고 조용히 할 얘기가 있노라고 했다.
       남자의 표정이 워낙 진지했던  터라 성일은 잠시 프런트를 비
     우고 남자와 함께 빈 객실로 들어갔다.

       "부탁이 있네."
       방으로 들어가기 무섭게 사내는 담배를 꺼내 들며 말했다.
       "무슨?..."
       "먼저 이유는 묻지 말고  이 일을 절대 비밀로 해주겠다는 약
     속을 해 주게."
       사내가 초조한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이마에는 연신 땀이 흘
     러내리고 있었다.

       "그럼요. 걱정하지 마시고 무슨 일인지 자초지종을 말씀해 주
     시죠?"
       "듣기에 따라서는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지금 나와 같
     이 들어와  방에서 기다리고 있는 여인은 실은 내  부인이라네.
     하긴 이런 곳에  부인과 함께 오는 것이  요즘은 오히려 이상한
     일이기는 하지만. 이유는 묻지 말아 주고, 지금 내 부인의 방에
     남자 하나만 넣어 줄  수 없겠나? 이왕이면 잘생기고 건장한 청
     년으로 말이야."

       "네엣??"
       사내의 이야기를 들고 성일은 깜짝 놀랐다. 자기 부인에게 다
     른 남자를  넣어서 대낮에 정사를 벌이게 하다니... 성일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았다.
       "아니, 이보세요 손님?  그게 무슨 말씀이 신지 이해가 안 가
     는군요. 혹시 농담을 하시는 건 아닌지..."
       "아니, 농담이 아니라네. 내가 비정상이거나 미친것도 아니고
     사이코나 변태는  더 더욱 아니지. 거기에는 정말 말하기  힘든
     이유가 있다네. 나도 괴롭기는 마찬가지니 이유는 묻지 말아 주
     게."

       "그러시면서 굳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지. 어때 가능하겠나?"
       남자를 불러 준다는 것이 사실상 있을 수 없는 일이긴 했지만
     성일로서는 참으로 호기심이 이는 일이었다.
       잠시 기다리라는 말을 하고  밖으로 나온 성일은 미스터 조를
     불러 자세한 상황을 이야기했다.
       "어떻게 그런 이상한 일이 있을 수가 있습니까?"
       "그러기에 말이야. 가정은 두 가지를 해볼 수가 있겠는데.."
       "두 가지요?"

       "그렇지. 남자가 아기를 가지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든지 아니
     면 남자가 바람을 피워서 부인이 이런 식으로 복수와 용서를 하
     려는 그 두 가지 말이야."
       "일리가 있긴 한데 두  번째는 그렇다 치고 남의 정자를 사서
     하는 인공 수정이야 병원에서도 할 수 있는 일 아닙니까?"
       "그렇기도 하지만  병원에서 그러면  기록이 남는다는 단점이
     있을 수 있고 또 비용이 비쌀 수도 있잖는가?"

       "흥, 그 말이 맞군요.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도의에 어긋나는 일이기는  하지만 지금 저 사내는 진심으로
     내게 부탁을  했어. 도의적으로 치자면 잘못 일수도 있지만  저
     사내의 입장에서 보면 긴박하고  절박한 처지의 구원이 될 수도
     있다고 봐. 어때 자네가 이 일을 맡아 주게?"
       그러면서 성일은 슬쩍 미스터 조의 얼굴을 처다 보았다. 순간
     그의 얼굴은 빨갛게 홍당무로 변했다.

       "뒤 탈이 없을지 모르겠군요."
       "싫다는 말은 아니군. 잘 생각했어. 우리 집에서 건장하고 잘
     생긴 사람은 자네밖에 없으니까..."

       그렇게 해서 미스터 조는  사내의 부인이 기다리고 있는 방으
     로 사내의 간곡한(?) 부탁을 받아 들어갔고 사랑하는 부인을 다
     른 사내의 품으로 떠나 보낸 남편은 줄담배를 계속해서 꼬나 물
     며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여인의  방으로 들어간 미스터 조는 한
     시간이 넘도록  나오질 않았다. 애가  탄 것은 비단 남편뿐만이
     아니라 성일도 마찬가지  였다. 계속해서 시계만 바라보며 애타
     게 부인이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사내의 모습이 갈수록 안쓰럽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기를 한 시간 반이  되어서야 미스터 조는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프런트로 내려왔다.  뒤이어 고개를 숙인 여인이 내려왔
     고 기다리던 그녀의 남편은  서둘러 그녀를 대리고 밖으로 나갔
     다.

       "이봐, 미스터 조! 상황이 상황인데 빨리 나와야지.사람이 어
     째 그 모양인가?"
       성일이 워낙 오랫동안 시간을 끌다가 나왔는지라 성일은 기분
     이 언짢았다.
       그러나 다음 미스터 조의 대답은 더 걸작이었다.

       "말도 마세요. 전들 빨리 나오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아니, 그럼?..."
       "참, 그 여자 대단한 여잡니다.도무지 그들 두 사람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단 말입니다."
       "그래, 뭐 이유라도 좀 알아냈나?"
       "그 여자 말입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대단한 여자
     였습니다. 빨리 일을 끝내고 나가려고 하는데 잠시도 틈을 주지
     않고 저를 붙잡지  뭡니까? 힘들어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 지금
     까지 여러  여자를 알아  왔지만 정말 그런  여자는 처음이었어
     요."
       "뭐라고? 별 요지경 같은 일도 다 있군. 그런데 말이야, 그들
     부부의 진정한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후후.. 그거야 그들 두 부부만이 알 수 있겠죠."

      


             제 16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 애인


       "세상에 만남도 하필이면 그런 만남이 어디 있겠니?"
       오랜만에 만난  K는 제법 심각한 얼굴로  담배를 꺼내 들
     었다.

       "만남이라니?..."
       나는 제법 궁금해진 얼굴로 녀석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이건 비극도  보통 비극이 아니라구?  하필이면 그 많은
     곳 놔두고 그곳에서 그녀와 부딪힐게 또 뭐야."
       그러면서 녀석은 기막힌 사연 하나를 내게 말해 주었다.

       "너 혹시 숙이 기억하지?"
       숙이라면 녀석과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죽고 못살 정도로
     가깝게 사귀던 아가씨였다. 이름이 숙이라는 외자였는데 보
     기에도 시원스런 성격에 얼굴도 제법 예쁜 편이어서 나와도
     같이 어울려서 몇번인가 술을 마신 기억이 있었다.

       "기억하고 말구. 그 애와는 헤어 졌다며?..."
       "그래, 우린  헤어졌지. 내 직업이 문제가 되기도 했지만
     헤어진 건 순전히 나의  결정이었다구. 내가 헤어지자고 그
     녀에게 얘길 꺼냈을 때  어땠는 줄 아니? 울고 불고 난리가
     아니었단다. 나 없이는 죽어도 못 산다고...그래서 내가 그
     랬지. 몇 년 후에 돈 많이 벌어서 번듯한 가게라도 하나 차
     린 후에 연락을 하겠다구..."

       "그랬었지. 나도 그렇게 알고 있는데. 그녀가 뭐 잘못 되
     기라도 한거야?"
       나는 그럴수록 더욱 호기심이 당겼다. 내심 나도 몇 번의
     만남으로 그녀에게 다소간의 호감이 있던 터였다.
       K는 들고 있던 맥주 잔을 연거푸 들이킨  후에 말문을 열
     었다.

       "왜, 그런 게 있다잖아.사랑하던 연인들이 헤어지게 되면
     서로에 대하여 늘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들을 하곤  하지.
     그래서 이다음  행여 다시 우연히  만나게 되더라도 서로의
     그 아름다운 추억 때문에  미소로써 지난날을 기억해 낼 수
     있는 것.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니?"
       "녀석, 웬 서론이 그렇게 기냐? 빨리 말하지 않고는."

       "그런데 나도 그녀를 만났다구. 바로 얼마 전이었어.헤어
     진지 꼭  일년 여 만이었지.  내심 그녀에게 연락을 취하고
     싶었는지라 얼마나 가슴이 설레였는지 아니."
       "그런데 뭐가 문제라는 거야?"

       "만나 장소가 바로 비극이었다는 거야. 어쩌면 세상에 그
     렇게 두 사람을  다시 만나게 하였는지. 하늘이 원망스럽더
     구나."
       "그렇다면 혹시?...."
       녀석의 이야길 듣고  보니 나름대로 집히는 데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설마 일뿐이었다.

       "그래, 그녀를  다시 만났지. 그런데 그게 어디였는지 아
     니? 바로 내가  일하는 모텔에서야. 그리고 그날은 내가 근
     무하는 날이었고..새벽 두시 쯤의 일이었어. 낯익은 웃음소
     리에 깜짝 놀라 나는 현관 문을 처다 보았지.  한쌍의 남녀
     가 술에 적당히 취하여 현관  문을 열고 들어서고  있더군.
     한눈에 보아도 서로가 사랑하는 사이임을 알 수 있었지. 처
     음부터 꼭 서로를 부둥켜  안은 그들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
     지. 그때 우린 두 눈이 마주친 거야.세상에 비극도 그런 비
     극이 어디 있겠니.생각을 해봐. 당시 내 가슴이 어떠했겠는
     지."

       "그래서?...."
       "그녀도 순간적으로 흠칫 놀라는 눈치더군.  그러더니 이
     내 냉정을 되찾고는 말하는 거야."
       "뭐라고?"

       "아저씨 여기 방값이 얼맙니까? 그러더군. 눈빛  하나 변
     하지 않고 말이야. 정말 더러워서 일 못하겠더군.생각을 해
     봐. 누군 좋다고  남자를 부둥키고 왔는데 나는 바로 내 코
     앞에서 다른 남자와 그 짓을 하는 그녀를 보고만 있어야 했
     다니...."

       "정말 비극이군. 어쩌다가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
       나는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내 경우라고 생각을 해 보니
     답이 나오지 않는 이야기였다. 하물며 녀석의 가슴은  온전
     했을까 만,
       "잊으라는 신의 뜻이었겠지. 제길, 그런데 하필이면 그런
     일이..."
       "그러니까 세상은 넓고도 좁다고 하잖니?"


       "그 이후엔 어떻게 되었어?"
       "새벽녘이었어. 같이 온 남자가 잠든 틈을 이용하여 그녀
     가 프런트로 내려왔더군. 우린 날이 밝은 때까지 맥주를 나
     누어 마셨어."
       "그녀가 뭐라고 하든?"

       "펑펑 울기만 하더군. 나를 잊으려고 곧바로 남자를 만나
     사귀었다는 거야. 이미 결혼 약속까지 한 상태였었지."
       "그런데 하필이면 그 많은 여관 놔두고 네가 일하는 곳으
     로 와서 사람 마음을 아프게 한 건 또 뭐래?"

       "내가 직장을  옮겼는데 그녀가  미쳐 그걸 모른 거겠지.
     아무튼 벨.보이가 아니고선 겪을 수 없는 벨.보이들만의 비
     극이라네."



                 17화. 조선족 동포 K씨의 눈물


       외람된 얘기지만 조선족 동포 K씨의 이야기를  잠시 하고
     넘어가야 겠다.

       중국에 거주하는 수많은  조선족 우리 동포들이 불법으로
     밀입북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 매스컴의 보도로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들이 여러 가지 사회적으로 문제(?)
     가 되기도 하고 또  밀입북 과정에는 비열한 사기가 극성하
     여 그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또한
     그렇게 동포들을 사기치고  속여 등쳐먹는 사람들도 대부분
     우리 한 동포인 한국인들이라는 사실도.

       여기 K씨도  바로 그런 사람들  중의 한사람이다. 웬만치
     먹고사는 우리네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리 대수롭지 않은 일
     이고 남의 이야기 일수도  있지만 정말 피해를 입고 돌아가
     는 그들에게는 피눈물 나는 이야기들이다. 행여 어찌되었건
     그들은 우리와 한 피를 나눈 한 핏줄, 한 동포가 아니던가.

       K씨는 중국 흑룡강성이라는  곳에서 살던 사람이다. 그녀
     의 남편은 우리로 치면 면사무소 같은 곳에서 일을 하는 사
     람이었고 한국에 가면 엄청난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을 믿고
     거금을 마련하여 한국행 밀입국선에 올랐다. 물론 한국에서
     그쪽으로 건너간 현지 브로커들의 개입이 있었음을 말할 나
     위도 없다.

       같은 마을의 처녀 하나와  함께 갖은 수모와 위험을 무릅
     쓰고 한국에 도착한 그들이  가까스로 취업한 곳은 서울 방
     이동에 있는 한 모텔이었다.

       같이 밀입국선을 탔던  사람들이 힘든 공장이나 공사판으
     로 떨어진 것에 비하여 그들은 비교적 운이 좋게도 모텔 청
     소 일을 하게  된 것이다. 힘든 공사일 보다는 비교적 일도
     손쉬웠고 보수도 넉넉한 편이어서(사실 우리 나라는 직업적
     인 인식 관계로 그 방면의 일손이 꽤 딸리는 편이라 한다.)
     그들의 얼굴에는 언제나 웃음끼가 가득했다.

       중동인이나 외국인들에게는 의례히 내국인 근로자들 급료
     보다 싼 급료를 지불하는 관례에 비추어 당시 그 모텔의 사
     장은 인정이 후한 사람이었고 내국인 종업원들과 언제나 똑
     같은 급료를 지불하였다.

       당시 숙식과 함께 K씨와 그 동네 처녀가  받았던 돈은 60
     만원 정도였고(91년) 그들은 꼬박 2년 여를 열심히 일을 했
     다. 간혹 K씨는  고향에 두고 온 남편과  두 아이들 생각에
     눈물을 쏟기도 했고 그 동네 처녀는 약혼자와 긴 사연의 서
     신을 늘 주고받았다.  비록 먹고살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었지만 그들에게도 따스한  가정이 그리웠고 고향이 그리웠
     던 것이다.

       가끔씩 중국으로 긴 시외전화를 하는 것을 빼고는 그들은
     정말로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옷 한 벌, 화장품 하나 사 쓰
     지 않으면서  오직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날만을 꿈꾸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2년  후, 그들은 고향에 돌아갈 계획을  세우고
     들뜬 마음으로  그날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게  되었다.
     아마도 겨울 초입의 시월 어느 날로 전해진다. 열심히 참고
     일한 덕분으로 두 사람 모두 천여 만원이라는 큰 돈을 모을
     수 있었다. 그들의  얘기로는 그 돈이면 중국에서는 엄청난
     가치가 있는 큰 돈이라고 했다.

       하지만 불행의 운명은 그들을 끝내 좌절의 구렁으로 몰아
     갔다. 날씨가  제법 추워지기 시작한 어느 날, 불시에 불법
     취업자 단속반이 들이닥쳤고 그들은 끌려가 조사를 받게 되
     었다. 그들이 불과 꿈에 그리던 고국으로의 금의 환향을 보
     름 정도 남겨 둔  시점이어서 모텔의 전 직원들은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며 그들의 무사를 빌었다고 한다.

       그러나 불행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당국에 조사를 받
     게 된  K씨는 국내법을 잘 몰랐던  관계로 행여 그동안  번
     돈을 압수 당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게 되었고 그들을 취업
     시켜 주고  쭉 뒤를 봐주었던  한국인 소개업자에게 가지고
     있던 돈을 급히 중국의 가족에게로 송금시켜 달라고 부탁하
     게 되었다.

       하지만 그 작은 사건은 돈을 벌기 위해 목숨을 걸고 밀항
     선을 탔던  두 사람에게 엄청난  시련이 되었다. 믿고 돈의
     송금을 부탁했던 한국인 업자는  그들의 생명 같은 그 돈을
     가지고 감쪽같이 자취를 감춘 것이다.

       불법 취업자란 딱지를 달고 제대로 수사 한번 할 수도 없
     었고 결국 그들은 임시  수용 시설에 보호되어 있다가 다시
     그들의 고향으로 강제 이송될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그 엄
     청난 상황에서 청운의 꿈을  안고 먼 동포의 나라에까지 와
     서 힘들여 번 돈을  모두 잃게 된 K씨의 마을 처녀는  목을
     메 자살을 하였고 K씨 혼자 쓸쓸히 가슴을  쓸어 내리며 귀
     향선을 타야 했다.

       K씨의 이런 슬픈  소식을 모텔의 직원들이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반 년이 흐른 어느 봄날, 멀리 흑룡강성에서 날아
     온 K씨의 편지 덕분이었다.

       편지에 K씨는 마지막으로  덧붙이며 울먹이고 있었다. 세
     상 그 어느 나라를 둘러보아도 이렇게 자신과 한 핏줄인 동
     포들을 등쳐먹은 민족은 아마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PS. 제대로 국회다운 국회 한번 소집하지 못하고 매일 당
     파 싸움만 일삼는 쓰레기 같은 정치가 양반들!!! 제발 정신
     좀 차립시다. 지금 당신들이 시간을 세워 놓고 입방아를 일
     삼는 이 시각, 수많은 생명들이 삶 앞에서 가련히 호롱불처
     럼 꺼져 가고 있나이다.....




                    제 18화: 술이 원수?


       술(酒)이란 아무리 뒤집어도 묘한 구석이 있다.
       특히 남녀간의 사랑에  있어서 술만큼 묘약으로 작용하는
     식품(?)이 또 있을까.

       어렵게 어렵게  선을 넘지 못하고  진행되던 사랑도 어느
     날, 술 한잔으로 술술 풀리는 경우가 있으니 말이다.

       예를 들어 서로가 지극히 사랑하는 연인이 있다고 가정을
     해 보자. 남자들이야 의례히 그런 것이지만 빨리 여자를 육
     체적으로 소유하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이치이고 여자도 은근
     히 남자에게 마음은 있는데  첫 벽을 허물기란 참으로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바로 이런 때 두 사람을 자연스레 연결시켜 주는 것이 바
     로 술의  힘이리라. 굳이 술에 취하고 안 취하고를  떠나서
     이성을 흐물거리게 하는 취기로 인해서 적당히 뒷변명의 여
     운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신세대들이야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옛
     날엔 많이들 그랬다.

       하지만 과연  술이란 것이 그렇게  항시 사랑의 묘약만은
     아닌 것 갔다. 남자들이야 별 문제될 것이 없다지만 여성들
     에 있어서는 술이야말로 가장 조심해야 할, 자신을  지키는
     필수 조건이기 때문이다. 특히 술만 먹으면 기억을 전부 날
     려 버리는 여성들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그녀들에겐 과
     히 술이란 컴퓨터 자판의 Del 키와 같은 존재이다.

       어느 날, 그런  휘발성 뇌를 가진 한 미모의 여인이 회사
     동료들과 술자리를 같이하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이 술에 약하다는 약점을 대강은 알고 있었지
     만 그래도 마주 앉은 그들은 평소에 친분이 두터운 같은 회
     사 동료 씨들이 아닌가. 거기에다가 문제는 그녀가 그런 대
     로 술을 싫어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었다.

       식사 후에 반주로 마시려던 술은 한잔이 두 잔이 되고 두
     잔이 석 잔이 되어 결국에는 그녀의 이성을 잃게 하고 말았
     다. 술자리가 끝나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자 그 중에서 비교
     적 술을 덜 마신  동료가 그녀를 집에까지 바래다주는 임무
     를 맡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누구였던가.  그 동안 내심 그녀를 짝사랑하
     였지만 이미 약혼자가 있는 그녀 였는 지라 멀리서 발만 동
     동 구르고  있던 처지가 아니였던가.  그 마당에 그가 이런
     우연찮게 찾아온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이유가 없었다.

       동료들을 따돌리고 한적하게 차를 몰던 그는 얼마를 달리
     다가 비교적 한적한 언덕길에  위치한 모텔 앞에 차를 주차
     시켰다. 그리고 취해 정신을 놓고 있는 그녀를 부축하여 방
     으로 들어갔다.

       그는 가슴이 뛰고 정신이 아찔했다. 늘 꿈에만 그리던 그
     녀와 한 방에 나란히 누울 수 있다는 사실이 도시 믿어지지
     않는 거였다. 일이 그러했으니 그런 그의 뉘리에 자신이 지
     금 무슨 일을 저지르고 있는지, 또 그것이 얼마만큼 돌이키
     기 힘든 죄악인지 따위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미쳐 숨을 돌리기도 전에 정신없이 그녀를 가진 후에라야
     그는 서서히 자신이 저지른  일이 어떤 일인지 깨닫게 되었
     다. 더구나  그녀에겐 가을이면 결혼식을 올릴  약혼자까지
     있질 않은가.

       그러나 얼떨결에 일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확장되고 말
     았다.
       잠시 후 냉정을 되찾은 그는 이미 정신을 잃고 쓰러진 그
     녀의 옷을 원래대로 입히기 시작했다. 드라마의 범죄자처럼
     완벽하게 처음처럼  방을 정리한 그는  작은 메모지 한장을
     남기고 황급히 모텔을 빠져나갔다.

       술이 너무 취하셨군요. 집을 몰라 이곳에 방을 잡아 드리
     고 저는 먼저 갑니다.자세한 상황은, 내일 출근해서 말씀드
     리도록 하겠습니다.  메모지엔 이런 내용이 쓰여  있었음은
     물론이다.

       한편 술에 취하여 자신의 몸이 어떻게 변화를 일으켰는지
     도 모르고 마냥 골아 떨어져 있던 그녀가 정신을 차린 것은
     새벽 네 시가 좀 넘은 시간이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던 그는
     메모지를 발견한 후에라야 또  자신이 일을 저지른 것을 어
     렴풋이 짐작하게 되었다.

       혹 무슨 실수를 저지른 것은 아닐까. 번쩍 정신이  든 그
     녀는 재빨리 자신의 옷 매무새부터 살펴보았다. 하지만  특
     별히 이상한 점은 없었다. 이미 일을 치른 동료  씨가 완벽
     한 사후 처리를 해 놓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자에겐 직감 같은 것이 있질 않은가. 더구나 아
     무리 뒷처리가 완벽했다손  치더라고 폭풍과도 같은 해일이
     자신을 몸을 훔치고 지나갔는데 말이다.

       그때 또다시 핸드백 안에서  연신 삐삐가 울려 대기 시작
     했다. 음성을 들어보니 그녀의 약혼자가 아닌가. 퇴근을 하
     고 집에 돌아와 잠자리에  들기 전이면 어김없이 전화로 사
     랑을 속삭이곤 하던 그녀가 새벽이 다 되도록 집에도 안 들
     어오고 연락이 두절됐으니 약혼자로서는 애가 탈만도 했다.

       삐삐를 확인한  그녀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무슨
     말로도 자신의 현  상황을 변명할 여지가 없었다. 그렇다고
     뾰족한 변명이 생각난 것도 아니고 가만히 자신을 추스려보
     니 별 일이 있지도  않았던 터라 그녀는 약혼자에게 전화를
     걸고 사실대로 설명을 했다.

       약혼자의 화가  머릿끝가지 치솟았음은 물론이다. 세상에
     생각을 해  보시라. 어느 남자가  여자 혼자서 술에 취하여
     여관에서 잠을 잤다는데 믿을 남자가 있겠는가.

       쏜살같이 위치를 물어 그녀가  있는 여관으로 달려 온 약
     혼자는 그녀에게는 들리지도  않고 다짜고짜 종업원을 불러
     세웠다. 주머니에 슬그머니 만원권 지폐 한 장을 밀어 넣었
     음은 물론이다.

      『이봐요, 00호 여자 손님 말이오. 언제 누구와 함께 들어
     왔는지 사실대로 말해 줄 수 있겠소?』
       잠시 돈을  곁눈으로 확인한 종업원은  짧은 순간 복잡한
     번뇌에 휩싸여야 했다. 자신의 새치 혀끝으로 두 남녀가 그
     동안 쌓아 온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질 것임은 뻔한 이치
     였기 때문이다.

       바로 그 순간, 대강의 사태를 훤히 들여다보고 있던 종업
     원은 곧바로 여인의 손을 들어주었다. 오랜 숙박 업소 경험
     과 사태를 재빠르게 한눈에  파악할 줄 알았던 종업원의 반
     짝이는 재치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글쎄요.. 워낙 바빠서 자세히 기억하진 못하지만.. 손님
     이 술이  많이 취해서 말입니다.  동료 직원이란 분이 방을
     잡아주고 갔습니다.

      『얼마나 머물다가 갔습니까?』
      『머물기는요. 여기서 방값을 지불하고는 곧바로 가셨지요.
     대신 저보고 잘 좀 모셔 달라고 당부를 하시기에 제가 방까
     지 부축해 드리고 문도 잠가 드렸는걸요.』

       그제서냐 약혼자는 안심이  되는지 얼굴 표정이 환해지며
     그녀를 데리러 방으로 올라갔다.

       종업원은 직장 동료라는 남자가 결코 그녀를 그냥 두었으
     리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방으로 올라간지 한
     시간이 더 넘어서 방을  나왔을 뿐더러 무언가에 쫓기듯 그
     표정이 불안으로 가득차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술로 인한 단  한번의 실수로 인하여 사랑이 깨어
     지는 불행한 일은 막고 싶었다. 어차피 육체적인 순결의 유
     무는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마음이다.

       그날 아침, 정답게  손을 마주 잡고 나가는 두 연인을 보
     면서 비로소 종업원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남자는 어젯
     밤에 자신의  연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모르고
     있는 눈치였기 대문이다.

       자, 만약에  여러분이 그  모텔의 종업원이었다면 어떠한
     선택을 하였겠는가. 참으로  아리송한 세상사가 아닐 수 없
     다.




                 제 19화: 호모와 레즈비언들.


       숙박 업소에서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호모와 레즈비언
     들이 그리 이상한 손님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업소의 매
     상을 올려 주는 중요한 단골 손님이기까지 하다.

       그러면 그들은  일반 손님들과 별다른 차이점이  있을까.
     전혀 그렇지가  않다.  그들은 일반 손님들과 전혀  차이가
     없을 뿐더러 오히려 더욱 얌전하고 매너가 있다. 비록 그들
     의 손을  잡은 서로의  상대가 같은 동성(同性)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지 그들은 남들과  똑같이 서로의 손을 잡고 애정
     표현을 한다.

       옛날에는 사회의 바라보는 시각이 있어서인지 여간해서는
     표를 안 냈지만 요즘은  시각의 변화도 많이 바뀌었을 뿐더
     러 그들 스스로도 많이  당당해 지려고 노력한 덕분인지 웬
     만하면 업소에 들어오는 손님이 일반 손님인지 아니면 동성
     애 자들인지는 쉽게 구분이 간다고 한다. 그들 스스로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스스럼없이 애정 표현들을 하기 때문이
     다.

       모텔 불야성도 예외는 아니어서 위와 같은 동성애자 손님
     이 공교롭게도 각각 한 팀씩 단골로 있었다고 한다.

       먼저 남성  동성애자 손님의 나이는  60이 넘은 할아버지
     한 분과 40대  중반의 남자 였는데 그들은  꼭 토요일 서너
     시쯤 하여 두시간 정도씩 대실로(숙박 손님이 아닌 잠시 쉬
     어 가는 손님) 여관을 이용하곤 했다.둘 중에 누가 여자 역
     할을 했는지 어떻게  피임을(?) 했는지 따위는 자세히 전해
     듣지 못했다. 두  사람 다 가정이 따로이 있어 보였는데 중
     요한 것은 그들이 그런  둘의 행위로 인하여 가정에서 찾지
     못한 그 무엇을 채우고 있었다는 점이다.

       레즈비언 단골 손님은 한달에 한두 번씩 불규칙하게 들르
     곤 했다. 처음에는 종업원들도 그들이 레즈비언들임을 몰랐
     다고 한다. 남자들이야 여관의 특성상 아무리 속이려  해도
     표가 나지만 여자들은 여간해서 표가 나지 않는 편이다. 인
     근의 술집 아가씨들도  종종 두 서너 명씩  짝을 지어 숙박
     업소에 들려 잠을 자는 경향이 있었기 대문이다.

       그런 그들이 꼬리를 잡힌 것은 빈 방으로 알고 방을 청소
     하기 위해 잘못 열고 들어간 청소 아주머니 때문이다. 손님
     이 체크아웃한 방으로 오인한  아주머니는 별 생각 없이 방
     문을 열고 들어갔고 그만 못 볼 것(?)을 보고 만 것이다.

       그녀들의 나이는 꽤 어린  편이어서 스물 한두 살이 겨우
     넘은 나이였다.
       그 일 이후,그녀들은 다시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아무
     래도 단골 여관을 옮긴 모양이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일주일에 한번씩은 꼭 오는 단골 손님이 있었다. 물론 동
     성이 아닌 일반  남녀 손님이었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사랑
     하는 사이처럼 보였고 다정해 보였다.

       그런데 어느 날,기가 막힌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인근에
     서 벌어진 폭력 사건으로 인하여 경찰에서 급작스레 인검이
     나온  것이었는데 그 과정에서(주민등록증을 조회하는)  두
     남녀중 한명이(남자처럼 분장했던) 여자로  밝혀진 것이다.
     머리는 짧은  스포츠 머리였고 남자 구두에 남자 옷,  굵은
     목소리는 틀림없는 남자  였건만 어이없게도 그는 틀림없는
     여자의 주민등록을 가지고 있었다.  즉, 그들은 레즈비언의
     일종이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동안 그들 동성애자들을 바라보는 내
     시각에 일대 변혁을  가져오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간 친하
     게 알고 지내던  형으로부터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충격적인
     고백을 듣게 된 것이다. 그간 오직 그들을 혐오하는 눈으로
     만 바라보던 내 시선에도 조금씩 변화가 일어났다. 비록 취
     재(?)라는 변명하이긴 했지만 그 형을 따라서 종로의 빠(동
     성애자 술집)들과 극장(그들이 자주 오는 극장)목욕탕(그들
     이 자주 모인다는)들을  다녀보게 되었고 그들의 삶을 조금
     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게 하여 많은 양의 자료들을 모을 수 있었고 얼마 전
     엔 그들에 대한 글을 한번  써 볼까 생각도 했지만 이미 많
     은 글들이 나와 있고 또 함부로 그들의 이야길 다룬다는 것
     이 왠지 조심스러워 아직까지 미루고 있다.

       글의 앞에서  나는 오직 흥미  위주의 동성애자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하지만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른 것
     이다. 이쯤하여  우리 일반인들도  그들을 바라보는 시각을
     다르게 고쳐야 할 때가 된 것은 아닌지.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며 똑같은 사고를 가지고 있
     다. 오히려 더욱 착하고 온순한 사람들 뿐이다.다만 태어날
     때부터 몸과  마음을 따로 가지고  태어난 조물주의 실수가
     있었을 뿐이다.  오죽하면 그들이 목숨을  내 걸고 성 전환
     수술에 매달리겠는가.

       이 글을  읽은 우리들 만이라도  그들에 대하여 색안경을
     끼기 보다는 따스한 위로의 눈빛을 가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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